[공개SW 활용 성공사례 174] 네패스 코코아팹 - 한국형 아두이노 ‘오렌지보드·지니어스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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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 반도체 기업인 네패스 내부에 안정호 상무를 포함한 3명이 프로젝트 사업부를 시작했다. 네패스는 전체 직원 수 2,500명에 해외 공장도 3군데나 있다. 사업 분야는 반도체 외에도 케미컬과 LED, 디스플레이, 반도체 클린룸 등을 만드는 특수건축 등 7개나 된다. 사업간 시너지를 극대화하려면 경쟁보다는 협업이 더욱 필요하다고 판단한 회사는 프로젝트 사업부에 힘을 실었다. 인터뷰를 진행한 네패스 서울사무소 곳곳에 있는 LED나 색상이 들어간 유리 패널 같은 것들은 모두 서로 다른 사업부의 기술과 인력이 협업해 만들어낸 결과다.
이부서간 협업을 촉진할 수 있는 앱(마법노트을 비롯해 관련 소프트웨어도 2종을 개발했다. 협업 관련 책을 출간하거나 교육도 진행한다. 재미있는 건 그 다음부터다. 새로운 비즈니스를 개척하게 되는데, 바로 오픈소스 하드웨어가 그 주인공이다.
한국형 아두이노의 탄생
안정호 상무는 “앞으론 단일 하드웨어 제품만으로는 성장한계에 봉착할 것으로 판단, 반도체 기술에 오픈소스 하드웨어를 접목했을 때 가져올 성장 가능성에 주목했다”고 말한다. 이에 따라 당초 사내 협업 활성화에 주력했던 프로젝트 사업부는 2년 전인 지난 2013년 오픈소스 하드웨어 플랫폼 사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후 지난해 말 코코아팹이라는 이름의 공식커뮤니티를 출범하는 동시에 전문 기술 인력도 대폭 늘렸다.
먼저 코코아팹이 한 일은 오픈소스 하드웨어에 활용되는 가장 대표적인 해외 제품인 아두이노 보드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아두이노 외에도 애드어프룻(Adafruit), 스파크펀(Sparkfun)과 같은 유사제품은 물론 값싼 중국산 아두이노 호환 제품 등 20여 종 이상을 분석했다. 이들 제품은 모두 아두이노 보드와 100% 호환되는 보드다. 하지만 안 상무는 당시 테스트를 하면서 소비자 요구를 고려한 만족스러운 제품은 없었다고 말한다. 부품 품질이나 불량률, 가격 부담, 제품 안정성이나 성능 같은 완성도, 언어 장벽 등이 만족스럽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코코아팹은 한국형 아두이노 보드를 직접 만들기로 했다.
이렇게 탄생한 제품이 바로 오렌지보드(Orange Board)다. 오렌지보드는 아두이노와 100% 호환되는 보드지만 조금 다르다. 표준 USB 대신 스마트폰에 자주 쓰이는 마이크로USB를 채택해 범용성을 높였고 USB 칩도 고급 사양으로 바꿨다. 물론 이보다 눈길을 끄는 건 세심함이다. 아두이노를 보면 기판에 새긴 핀번호가 너무 작게 나와서 보기 힘들다. 이에 비해 오렌지보드는 이를 잘 보이게 크게 써서 가독성을 높였다. 납땜 마감 처리를 개선해 안전성은 물론 누전방지에도 신경 썼다. 안 상무가 오렌지보드 기판 뒷면을 뺨에 비빈다. 굳이 다른 설명이 필요하랴.
한국형 아두이노라는 자부심도 엿볼 수 있다. 오렌지보드 기판 뒷면에는 우리나라의 창조와 예술을 대표하는 예술의 전당 무늬가 새겨져 있다. 또 실제 아두이노에는 로고처럼 이탈리아 지도가 그려져 있지만 이 제품에는 서울지도가 그려져 있다.
▲ 오렌지보드는 한국형 아두이노다. 표준 USB 대신 마이크로USB를 썼고 고급 USB 칩을 얹었다.
핀번호의 가독성을 높이고 납땜 자리를 없애 다칠 염려도 없다.
한국형 아두이노도 좋지만 혹시 가격이 비싸지는 않을까. 안 상무는 경쟁 모델과 비교해도 오렌지보드가 3가지 면에서 더 유리하다고 말한다. 경쟁 모델 격인 아두이노 스타터킷의 경우 14∼15만원, 아벤트킷 같은 제품도 12∼13만원이다. 하지만 오렌지보드의 가격은 11만원대. 일단 가격이 싸다.
더구나 경쟁 제품은 모두 해설도 영문판인 데 비해 오렌지보드는 모두 이를 한글화했다. 마무리는 A/S다. 오렌지보드는 1년 A/S 지원 기간 동안 고장이 날 경우 바꿔준다. ‘직구’가 해줄 수 없던 문제까지 깔끔하게 해결한 것이다. 당연하지만 오렌지보드는 ‘오픈소스 하드웨어’를 기반으로 하는 만큼 이글캐드로 그린 회로도를 모두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 지니어스키트는 공학도가 아닌 초보자를 위한 조립 키트다.
오렌지보드를 포함하고 있는 이 제품은 어디에서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 난감한 초보자를 위한 것이다.
코코아팹은 오렌지보드 뿐 아니라 초보자를 위한 조립 키트인 지니어스키트(Genius kit)도 동시에 개발했다. 보통 아두이노가 공학도를 위한 것이라면 지니어스키트는 이들을 뺀 95%를 위한 제품이다. 오픈소스 하드웨어나 사물인터넷, 1인 발명에 관심은 있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를 초보자를 위한 제품인 것. 이들 제품은 판매 전 메이커(Maker), 일명 이 분야에서 작가로 불리는 전문가를 대상으로 테스트를 거쳤다.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3개월 동안 개발한 이들 제품은 올해 1월말부터 판매에 들어갔다. 이미 10군데가 넘는 전자부품 전문 온라인 쇼핑몰이 오렌지보드와 지니어스키트를 팔고 있다. 판매한지 며칠 지나지 않은 상태지만 안 상무 표현을 빌리자면 “시장 반응이 빠르다”고 한다. 좋은 출발이다.
▲ 오렌지보드의 시스템 블럭도
“기술 민주화 시대가 다가온다”
오렌지보드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답변을 듣고 보니 우문이었다. 안 상무는 “마치 컴퓨터와 같다”고 설명했다. 세계에서 맨 처음 아무런 목적 없이 만들어진 제품이 컴퓨터라는 얘기다. 오렌지보드로 못 만들 건 없다. 스마트워치나 구글글라스 같은 웨어러블도 물론 가능하다.
안 상무는 3년 전 미국 출장길에 애플스토어를 찾았던 기억도 되짚었다. 매장 한 켠에 RC카와 로봇 헬기가 있어서 “참 인상적이다” 싶었는데 다시 지난해 갔더니 이번에는 무선으로 운동 데이터를 측정해주는 액티비티 트래커가 쏟아져 있었다는 것.
어떻게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제품을 낼 수 있었을까. 안 상무는 미국 제조업의 부활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게 ‘오픈소스 하드웨어’ 라고 말한다. 아두이노나 오렌지보드 같은 오픈소스 하드웨어의 장점 중 하나는 이렇게 빠르게 바뀌는 제품 개발 주기에 맞춰 실제 제품이 구현 가능한지 여부를 프로토타이핑(시범 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안 상무는 “지금 제조업의 혁신은 오픈소스 하드웨어”라면서 만들고 싶은 그림(제품)을 가장 빨리 만들 수 있게 해주는 비법이라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코코아팹은 네패스라는 반도체 기업 입장에서도 의미가 사뭇 다르다. 반도체 산업은 2가지 시장으로 나눌 수 있다. 기술 고도화와 기술 민주화가 그것이다. 이제까지 반도체 회사는 기술 고도화를 바탕으로 한 B2B 시장 판매에 주력했다. 안 상무 말처럼 B2C 시장으로 존재했던 건 기껏해야 CPU와 메모리 2개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시장이 바뀌고 있다. 이제 소비자에게도 반도체를 직접 판매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 구글, 등과 같은 대형 IT 기업이 이미 이런 기술 민주화 시장에 뛰어들었다. 기술을 잘 포장하고 고객이 더 편하게 제품을 쓸 수 있게 만들어 개인 소비자가 편하게 반도체를 구입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20세기가 산업혁명의 시대였다면 이젠 개인생산 시대, 기술 민주화 시장에 투자하고 있다는 얘기다.
코코아팹은 이를 위해 안 상무의 표현을 그대로 옮겨오면 친구(개인 소비자)가 원하는 걸 하드웨어로 제공하는 것 외에 친구와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점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 코코아팹은 오렌지보드 개발 이전부터 코코아팹(http://Kocoafab.cc) 사이트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제대로 홍보 한 번 안했지만 이곳에는 매달 2만 명에 달하는 메이커가 찾아온다. 코코아팹은 아두이노와 오렌지보드 관련 사용 방법을 공개하는 한편 한글화 작업, 교육 자료 등을 공개하고 있다. 단계별 수준별로 공개해 초보자도 손쉽게 직접 따라할 수 있도록 했다. 코코아팹 사이트는 5∼6명을 투입해 매일 1∼2개씩 새로운 콘텐츠를 올리고 있다. 그 뿐 아니라 등록 회원 300명 정도가 직접 만든 프로젝트도 볼 수 있다.
닷두이노 “오픈소스 하드웨어 한류 이끌 것”
코코아팹은 홈페이지를 통한 콘텐츠 외에도 올 상반기 진행을 목표로 국내 주요 3개 대학의 자동자공학부, 예술디자인학부들과 함께 오픈소스하드웨어 및 사물인터넷(IoT) 교육 과정 개설을 앞두고 있다. 상대적으로 아두이노에 익숙한 공학도 외에도 예술 등 다방면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신제품도 준비 중이다. 가장 인상적인 건 닷두이노(Dotduino)다. 언론에 처음 공개한다는 닷두이노는 손바닥 절반 크기 정도인 오렌지보드의 모든 기능을 단자부를 빼곤 모두 손톱만한 칩에 넣은 것이다. 기존에 가장 작던 비슷한 칩과 비교해도 크기가 3분의 1 수준. 닷두이노처럼 작은 칩을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진 곳은 현실적으론 독일 A사와 네패스 정도라고 한다. 안 상무는 이 제품이 오픈소스 하드웨어 분야에서 뒤쳐진 한국의 경쟁력을 끌어올릴 것이라고 자신한다. 그의 표현을 다시 빌리면 “오픈소스 하드웨어의 한류” 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 닷두이노의 크기는 가로세로 7.35mm에 불과하지만 단자부를 뺀 아두이노의 모든 기능이 담겨 있다.
닷누이노는 공개SW 마이크로 컨트롤러로 암텔 AVR EEPROM을 이용했고 모든 운영체제를 지원한다. 크기는 7.35×7.35mm. 표준 아두이노의 크기가 70×54mm, 아두이노 미니도 30×18mm라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울 만큼 작다. 현재 블루투스 칩을 내부에 넣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며 3월말에는 워킹샘플을 선보일 예정이다. 워킹샘플이 나오면 먼저 메이커를 대상으로 테스트를 진행할 계획. 이 제품의 장점은 웨어러블 프로토타입도 실제처럼 만들 수 있다는 데에 있다. 누구나 스마트밴드 같은 제품을 만들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닷두이노 외에 전도성 펜도 3월 중 선보일 예정이다. 전도성 펜은 말 그대로 선을 긋는 것만으로도 전기가 통할 수 있도록 하는 펜을 말한다. 간단한 회로도를 구성하고 싶을 때 그냥 펜처럼 그릴 수 있게 해준다. 비슷한 제품이 해외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킥스타터를 통해 선보인 바 있지만 펜 한 자루가 담겨진 키트 하나의 가격이 최대 5만원까지 나가는 탓에 부담이 컸다. 하지만 코코아팹이 내놓은 전도성 펜은 이 제품보다 10배 이상 전도성은 높으면서도 가격은 아직 책정하지 않았지만 5분의 1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안 상무는 “오픈소스 하드웨어는 우리나라가 잘 할 수 있는 분야”라고 말한다. 사물인터넷(IoT) 시대에 필요한 조건으로 보통 전기와 전자, 컴퓨터, 소프트웨어, 기계 5가지 분야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안 상무는 국내에도 이런 기술력을 가진 업체가 수두룩하지만 문제는 아직까지 모두 흩어져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기업 간의 협업과 참여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반도체 기업의 경우 이제까지 대기업 위주, B2B 시장만 바라봤지만 오픈소스 하드웨어와 일반 소비자 시장에 대한 참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픈소스 하드웨어를 바탕으로 한 기술 민주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인터뷰] 네패스 안정호 상무
“오픈소스 하드웨어, 인류 역사상 개인 역량을 가장 극대화할 것”
▲ 네패스 안정호 상무
Q. 오픈소스 하드웨어의 장점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나
A. 과거에 일반인이 접할 수 없었던 높은 수준의 정보와 기술을 손쉽게 접하고 활용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대학 논문에 비유하고 싶다. 만일 수준 높은 논문에 모두 특허를 건다면 어떻게 될까. 석사까지야 그렇다고 쳐도 박사 과정에선 비용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올라갈 것이다. 오픈소스 하드웨어로 공개한다면 인류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오픈소스 하드웨어의 발전 속도는 엄청나게 빠르다. 3∼4년 뒤에는 기존 기술 수준을 위협하게 될 수도 있다. 누구나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손쉽고 빠르게 만들어 낼 수 있는 오픈소스 하드웨어가 확산되면 개인 역량은 인류 역사상 가장 극대화되는 시대가 열릴 것으로 본다.
Q. 오픈소스 하드웨어 발전을 위해 필요한 점은 뭔가
A. 협업이다. 오픈소스 하드웨어는 우리나라가 잘 할 수 있는 분야다. 보통 사물인터넷 시대에 필요한 요소로 전기와 전자, 컴퓨터, 소프트웨어, 기계 5가지를 얘기한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기술적 역량을 갖춘 곳은 얼마든지 있다. 문제는 그동안은 대기업이나 B2B 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 아직까지는 모두 흩어져서 각개전투를 하고 있다. 예전에는 반도체 회사끼리 미팅을 하면 서로 자신의 기술은 최대한 감추고 상대방의 기술은 조금이라도 알아내려 애썼다. 하지만 오픈소스 하드웨어 시대엔 이런 경쟁은 필요 없다. 서로 열고 지식을 공유하고 여기에 새로운 걸 얹어서 발전시켜야 한다. 나 홀로 모든 것을 다할 수 있는 시대는 갔다. 다양한 산업과 기업, 그리고 일반인 모두의 참여와 협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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