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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브라우저 역사의 10가지 가장 중요한 이정표

OSS 게시글 작성 시각 2013-05-16 16:19:08 게시글 조회수 4275

2013년 04월 14일 (화)

ⓒ ITWorld, Gord Goble | PC World


어떤 사람이 반짝거리는 새 차를 샀다. 외형도 멋지고 성능은 발군이며 최신 안전 기능도 모두 갖췄고 안락함도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 질투심에 휩싸인 누군가가 한밤중에 몰래 찾아와 차를 모두 분해해버렸다. 다음 날 아침 수없이 많은 부품 조각에 둘러싸인 차 주인은 놀라울 정도로 복잡한 이 차가 이제 완전히 쓸모 없게 되었음을 알아차린다.

 

브라우저가 없다면 인터넷이 바로 이런 상황이 된다.

 

겉보기에는 그냥 빈 판자 같지만 사실 웹 브라우저는 엄청나게 복잡하며, 코드로 만들어진 인터넷을 영화 매트릭스와 같은 공간으로 만들어준다. 이제 우리는 이것 없이는 결코 살 수 없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아르파넷(ARPANET), 1969
1969년에는 비틀즈가 “디 엔드(The End)”를 녹음하면서 그와 동시에 정말 끝을 준비하고 있었다. 새 차 가격은 3,000달러였고, 사람이 달에 착륙했고(알려진 대로라면), PC나 인터넷과 같은, 이해할 수 없는 미래의 용어들은 몽상가나 미치광이의 전유물이었다.
“브라우저”란 도서관에서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열심히 탐독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용어였다. 그러나 아르파넷이라는, 일종의 시초가 있었다. 미 국방부에서 네트워킹 연구를 촉진하기 위해 개발한 아르파넷은 여러 대학의 메인프레임 컴퓨터를 연결했다. 그 후 20년 동안 아르파넷이 곧 인터넷이었다. 또한 웹 이전 시대를 들여다보기 위한 연결 고리로서 이 기사의 첫 번째 주인공으로 선정되었다.


월드와이드웹(또는 넥서스-Nexus), 1991
아르파넷은 느리고 굼뜬 20년을 보낸 후 1990년에 사망했다. 그 자리에는 새롭고 신선한 네트위킹 기술과 개념들이 들어섰는데, 그 중에서 스위스에서 건너온 이것은 시간의 검증을 통과했을 뿐만 아니라 인류의 문화를 영구적으로 바꿔놓았다. 바로 스위스 소재 물리학 연구 시설인 CERN에서 1989년 영국 과학자인 팀 버너스 리가 “발명한” 월드 와이드 웹이다.
2년 후, 월드 와이드 웹에 최초의 브라우저인 월드와이드웹(공백 없이 붙여 씀)이 등장했다. 역시 버너스 리가 만든 월드와이드웹은 1991년 전후의 온라인 세계(CERN 관련 정보가 대부분이었고 포르노 사이트는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최초의 창문이었다.



모자이크(Mosaic), 1993
인터넷 초창기에 기술에 탐닉했던 사람이라면 분명 모자이크를 기억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모자이크는 컴퓨터 자체 말고도 그 뒤편에 가치 있는 무언가가 있음을 알리는 최초의 징표였다. 일리노이 대학의 국립 슈퍼컴퓨팅 애플리케이션 센터에서 개발된 모자이크는 일반 대중에 공개되었으며 쓸데없는 복잡함을 걸러낸 단순 명료함이 특징이었다. 텍스트와 이미지를 함께 표시한 최초의 브라우저였으며 지금의 브라우저에서도 사용되는 레이아웃을 최초로 도입했고 마이크로소프트 컴퓨터에서 비교적 쉽게 실행이 가능한 최초의 브라우저였다. 성년기에 접어든 인터넷 역시 모자이크의 인기에 힘을 실었다.
모자이크는 몇 년에 걸쳐 폭넓은 인기를 유지했으며 90년대 웹 브라우저의 토대가 됐다.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Netscape Navigator), 1994
“넷스케이프에 최적화됨”이라는 문구는 서핑의 초창기 웹 사이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구였다. 넷스케이프의 내비게이터는 모든 면에서 모자이크의 후계자였고 모자이크를 만들었던 그 팀이 거의 그대로 다시 뭉쳐 만든 브라우저였다. 모자이크를 이끈 마크 안데르센이 주도한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는 모자이크를 기반으로 대폭 개선되었으며 인터넷을 천연색의 생생한 공간으로 바꿔놓았다. 즉석 페이지 로딩을 지원했으며, 거만한 대학 설비급 연결이 아닌 보통 사람들이 사용하는 14.4kbps 전화 접속 모뎀을 더 배려했다.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었고 인터넷의 광범위한 확산에 참여한 모든 주체가 이 브라우저를 지지했다. 웹 보급 초창기의 정점은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가 장식했다.



오페라(Opera), 1994
스칸디나비아 출신의 오페라는 1994년 출시 후 변덕스러운 업계에서 꾸준함을 유지한 드문 사례의 주인공이다. 다른 브라우저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거나 부침을 거듭하는 동안 오페라는 (비록 규모는 작지만) 일정한 데스크톱 시장 점유율을 유지했으며, 천천히, 야금야금 PC 외의 다른 영역까지 영역을 넓혀나갔다.
닌텐도 위, 닌텐도 DS, 아이패드와 안드로이드 태블릿, 스마트폰, PDA 및 기타 모바일 기기에서 오페라 디자인의 브라우저를 볼 수 있다. 현재 전 세계 오페라 사용자는 3억 명 수준이다. 준수한 성적이다. 오페라는 무자비한 힘이 지배하는 경쟁 무대에서 진취성만으로 성공할 수 있음을 입증하는 사례다.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 3, 1996
최초의 내비게이터가 출시되고 2년 뒤, 초창기 몽상가들의 예언대로 인터넷의 뚜렷한 보편화를 이끌었다고 할 만한 버전이 나왔다. 온라인 세계로 뛰어드는 소비자의 4명 중 3명이 넷스케이프 제품을 사용한다는 사실에 넷스케이프 수뇌부도 한껏 고무되었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넷스케이프에서 약간의 균열 조짐도 있었다. 내비게이터 3은 내비게이터 2에 비해 혁신성이 떨어졌고, 이전 버전의 인기에 편승한 면이 있었다. 이전 버전들에 만연했던 버그들도 제대로 수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걱정거리는 넷스케이프 왕국 밖, 워싱턴 레드몬드에서 자라났다.



인터넷 익스플로러 3, 1996
내비게이터 3과 같은 연도, 같은 달에 개발이 완료된 인터넷 익스플로러 3은 지금 말하는 속칭 “브라우저 전쟁”으로 이어진, 마이크로소프트의 첫 번째 대대적인 기습 공격이었다.
이 시점까지 내비게이터가 압도적으로 우위였다는 사실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인터넷을 온전히 이해하는 데 애를 먹었고 익스플로러 버전 1과 2는 신통치 않았다. 그러나 윈도우와의 긴밀한 통합 덕분에 마이크로소프트는 탄탄한 사용자 기반을 확보할 수 있었다. 세 번째 버전은(여전히 무료에 멀티미디어, 자바 애플릿, 액티브X 컨트롤과 같은 현란한 신기능과 인터넷 메일 등의 애드온을 지원) 환골탈태한 모습이었다. 내비게이터는 2000년대가 되기도 전에 거의 잊혀졌다.



파이어폭스 1.0, 2004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새천년의 서막에 브라우저 세계를 주도했다 해도 제품에 대한 만족도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익스플로러가 쓸데없이 무겁다고 느끼는 사람, 보안 문제에 우려하는 사람, 윈도우 패키지에 넣어 “강제로” 사용자에게 익스플로러를 떠민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강제성은 없었다. 그러나 2004년 나타난 강력한 오픈 소스 도전자는 익스플로러에 환멸을 느낀 사람들의 해방구가 됐다. 내비게이터의 유산에 뿌리를 두고 넷스케이프에서 분리된 모질라 재단에 의해 개발된 파이어폭스 1.0은 완벽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시기상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이후 파이어폭스는 확고히 자리를 잡았고 브라우저 전쟁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해졌다.



모바일 사파리, 2007
“서핑을 떠나요, 모두 배워요. 나와 함께 사파리를 즐겨요”
몽상가인 브라이언 윌슨의 이 노래 구절을 듣고 생각을 키워온 스티브 잡스는 그로부터 약 40년 후 애플의 자체 웹 브라우저를 세상에 내놓았다. 문제는 사파리가 그 이후 10년 동안 데스크톱 환경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모바일 환경에서는 양상이 전혀 달랐다. 아이폰과 아이패드, ‘아이’가 들어간 모든 것이 완전히 지배하는 이 모바일 세계에서는 모바일 사파리(최초 사파리가 등장하고 3년 뒤 2007년에 출시됨)가 가장 유력한 브라우저다. 갈수록 모바일화되고 있는 세계에서 그 힘은 실로 막강하다고 할 수 있다.



구글 크롬, 2008
더 최근 날짜의 크롬을 선정하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다. 어쨌든 크롬은 최근에야 인터넷 익스플로러와 파이어폭스를 누르고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브라우저 1위에 등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5년의 역사 동안 30회 정도의 버전 업데이트가 있었지만 최초 버전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 버전은 없다.
구글은 서두르지 않았다. 몇 년 동안은 브라우저를 개발할 계획이 없다며 의도를 숨겼다. 이후 전 파이어폭스 개발자들을 대거 영입해서 가장 뛰어난 코드만 선별하고 인기 있는 웹킷 레이아웃 엔진을 선택했다. 현재 크롬은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며 빠르고 유행의 첨단을 걷는다. 크롬의 부상 과정은 상당히 극적이다. 구글 크롬 OS도 그 전례를 따른다면, 크롬 웹 브라우저의 도약은 그저 시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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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 http://www.itworld.co.kr/slideshow/8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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