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기사] EU 기술 주권 전략으로 본 오픈소스의 변화…코드 공개를 넘어 핵심 인프라로
이지현 IT전문기자(j.lee.reporter@gmail.com)
오픈소스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 오픈소스는 비용 절감, 개발 생산성 향상, 커뮤니티 기반 혁신을 위한 수단으로 주로 인식됐다. 기업에는 개발 속도를 높이고 특정 기술을 빠르게 도입하기 위한 실용적 선택지였고, 공공부문에서는 예산 절감과 투명성 제고를 위한 대안으로 논의되어왔다.
AI 시대에 들어서며 이 흐름이 달라지는 모양새다. 이제 오픈소스는 공개된 소스코드나 무료로 쓸 수 있는 소프트웨어만을 뜻하지 않는다. AI 모델, 클라우드 인프라, 반도체, 공공 디지털 서비스, 공급망 보안, 기술 표준화와 연결되는 전략적 자산으로 부상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을 누가 만들고, 누가 통제하며, 누가 지속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가 라는 기술 주권의 문제와 직결되는 것이다.
이 변화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곳이 유럽이다. 유럽연합(EU)은 최근 기술 주권 패키지와 EU 오픈소스 전략을 통해 오픈소스를 AI 시대 디지털 자립과 산업 경쟁력의 핵심 수단으로 제시했다. 이 글에서는 EU가 오픈소스를 기술 주권 전략에 편입한 배경과 주요 내용을 살펴보고, 중국과 한국의 사례를 함께 짚으며 AI 시대 오픈소스의 가치를 따져본다.
EU 기술 주권 패키지, 오픈소스를 중심에 놓다
EU 집행위원회는 2026년 6월 3일 반도체, 클라우드·AI, 오픈소스, 에너지 디지털화를 아우르는 정책 묶음, 이른바 '유럽 기술 주권 패키지(European Technological Sovereignty Package)'를 발표했다. 유럽의 디지털 기술 자립도를 높이기 위한 전략과 입법 구상을 함께 제시한 것이다.
패키지는 네 개의 축으로 구성된다. 반도체 생태계와 공급망 회복력을 겨냥한 '반도체법2.0(Chips Act 2.0)', AI·클라우드 잠재력을 여는 '클라우드·AI 개발법(Cloud and AI Development Act, CADA)', 기술 스택 전반의 종속을 줄이는 'EU 오픈소스 전략', 그리고 에너지 분야 디지털화·AI 로드맵이다.
주목할 점은 오픈소스의 위치다. 이번 패키지에서 오픈소스는 별도의 개발자 정책이나 소프트웨어 산업 지원책이 아니라, 반도체부터 클라우드, AI, 공공 인프라까지 이어지는 기술 주권 전략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EU가 오픈소스를 기술 주권 확보를 위한 핵심 도구로 본다는 신호다. 다만 오픈소스 전략 역시 법안 자체가 아니라 방향을 제시하는 전략 문서에 가깝다.
EU 오픈소스 전략의 진단과 실행 방안
EU 오픈소스 전략을 살펴보면, EU는 유럽에 300만 명 이상의 오픈소스 기여자가 있음에도 소프트웨어, 클라우드, AI, 인프라 영역에서 비EU 디지털 제공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고 진단했다. EU는 유럽 외 국가의 디지털 기술·서비스에 매년 2,600억 유로 이상을 지출하고 있으며, 이를 단순한 비용 문제가 아닌 구조적 의존의 문제로 바라봤다. EU는 오픈소스가 이러한 의존을 완화하고, 통제권 강화, 벤더 종속 축소, 보안성 제고, 재사용 가능한 기술 기반 확보, 유럽형 대안 육성에 기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진단 아래 EU는 네 가지 방식으로 전략을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첫째, 기술 주권을 위한 오픈소스다. EU 가치에 부합하는 유럽산 오픈소스 대안의 개발과 채택을 확대한다. 둘째, 활력 있는 오픈소스 생태계 조성이다. 기업, 커뮤니티, 거버넌스, 보안, 유지관리, 인력 양성을 함께 다룬다. 셋째, 공공행정 내 오픈소스 확대다. 조달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집행위 자체의 오픈소스 활용도 강화한다. 넷째, 표준과 국제 협력 강화다. ‘EU 기술 비즈니스 지원 구상’을 통해 유럽 오픈소스 솔루션의 해외 확산을 지원하고, 표준화 과정에 오픈소스를 더 깊이 통합한다는 구상이다.
<표1 EU 오픈소스 전략의 4대 목표와 주요 실행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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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 |
주요 실행 과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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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술주권을 위한 오픈소스 |
• 오픈 인터넷 스택(Open Internet Stack) 구축: EU 정책과 규범에 부합하는 오픈소스 솔루션 카탈로그 마련 • 회원국 및 디지털 커먼즈 유럽 디지털 인프라 컨소시엄(Digital Commons EDIC)과 협력해 클라우드, 업무용 소프트웨어, 보안 이메일, 분산형 소셜미디어 등에서 독점 소프트웨어의 오픈소스 대안 확산 • 유럽 디지털 신원 지갑(EUDI Wallet), 유럽 비즈니스 월렛(European Business Wallet), 연령 인증 시스템에 오픈소스 적용 확대 • 반도체, 운영체제, 클라우드, AI, 사이버보안, 차세대 인터넷 등 핵심 분야의 오픈소스 프로젝트 우선 지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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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활력 있는 |
• 스타트업 대상 액셀러레이터(accelerator) 지원, 법률·라이선스 지원, 교육 및 공공조달 참여 기회 제공 • 핵심 오픈소스 자산 관리를 위한 스튜어드십 툴킷(Stewardship Toolkit) 개발 및 EU 기반 오픈소스 관리 기관 지원 • 오픈소스 유지관리 체계(Open Source Maintenance Instrument) 구축, 핵심 의존성 분석, 미러링 체계 구축 등 보안 강화 • 학교, 대학, 공무원, 일반 학습자를 대상으로 오픈소스 교육 및 인재 양성 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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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공공행정에서의 오픈소스 활용 |
• 오픈 표준 및 오픈소스 친화적 공공조달 가이드라인 마련 • 오픈소스 프로그램 오피스(OSPO, Open Source Programme Office) 및 공공부문 OSPO 네트워크 강화 • 저장소 모니터링, 취약점 관리, 라이선스 준수, 의존성 위험 관리 등 공통 보안 기준 마련 • 디지털 투자 및 거버넌스 과정에 개방성과 기술주권 원칙을 내재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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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표준화 및 국제 협력 강화 |
• EU 기술 비즈니스 지원 구상(EU Tech Business Offer)를 통해 유럽 오픈소스 기업과 개발자의 해외 진출 지원 • 오픈 인터넷 스택(Open Internet Stack), AI, 유럽 디지털 신원(EUDI), 유럽 비즈니스 월렛(European Business Wallet) 등 유럽산 기술을 파트너 국가로 확산 • EU 표준화 규정(Standardisation Regulation) 개정을 통해 오픈소스 커뮤니티의 국제 표준화 참여 확대 |
EU 오픈소스 전략은 그 자체로 강제력을 갖는 법안은 아니지만, EU는 이를 주요 디지털 정책의 실행 기반으로 연결해 한계를 보완했다. EU는 오픈소스가 AI 대륙 행동계획, 상호운용 가능한 유럽법, 클라우드·AI 개발법(CADA) 등 EU 법·정책의 이행을 촉진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EU 디지털 신원(EUDI) 프레임워크처럼 안전하고 주권적인 디지털 기술을 뒷받침하는 기반으로도 오픈소스를 제시했다.
중국의 자립형 오픈소스 생태계
오픈소스를 기술 자립 수단으로 삼은 나라는 EU만이 아니다. 중국은 2020년 산업정보화부(MIIT) 지원으로 설립된 오픈아톰 재단(OpenAtom Foundation)을 국가급 거버넌스 기반으로 삼고, 운영체제 오픈하모니(OpenHarmony)와 오픈오일러(OpenEuler) 등 핵심 인프라의 오픈소스화를 통해 외국 기술 의존도를 낮춰왔다. 중국남방전력망이 오픈하모니를 도입하는 등 일부 프로젝트는 전력 설비 유지보수와 같은 산업 현장에도 적용됐다.
AI 영역에서도 중국 오픈소스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허깅페이스에 따르면, 2025년 새로 등장한 트렌딩 모델의 상당수는 중국에서 개발됐거나 중국 모델에서 파생됐다. 2025년1월 딥시크(DeepSeek) R1이 반향을 일으킨 이후, 중국AI 생태계는 오픈소스·오픈웨이트 모델 공개 쪽으로 빠르게 기울었다. 바이두는 2024년만 해도 허깅페이스 허브 공개 모델이 없었지만 2025년에는100개 이상을 공개했고, 바이트댄스와 텐센트는 공개 모델 수를 각각 8~9배 늘렸다. 상대적으로 폐쇄적이던 바이두와 미니맥스도 오픈 릴리스 전략으로 방향을 틀었다.
현재 대표적 중국 AI 관련 오픈 모델로는 딥시크-R1(DeepSeek-R1), 알리바바의 큐웬(Qwen), 즈푸AI의 지엘엠(GLM), 문샷AI의 키미(Kimi), 01.AI의 이(Yi), 바이두의 어니(Ernie) 계열, 텐센트의 훈위안(Hunyuan), 미니맥스(MiniMax)의 미니맥스 모델 등이 있다.
허깅페이스는 이 움직임이 주권 문제와 깊이 연관된다고 설명했다. 2026년 보고서에서 허깅페이스는 오픈소스AI가 점점 주권의 문제와 연결되고 있으며, 오픈 웨이트 모델은 정부와 공공기관이 자국 법체계 안에서 자국 데이터로 시스템을 미세조정할 수 있게 해준다고 짚었다. 이런 투자는 학습 생태계가 탄탄한 국가에서 이미 성과를 내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모델과 데이터셋이 대체로 개발된 지역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경향이 있는데, 개발자들이 자국 언어를 더 잘 반영하고 기술적 요구와 활용 목적에 맞는 모델을 택하기 때문이다.
특히 딥시크R1 공개는 흐름의 성격도 바꿨다. MIT 라이선스로 모델 가중치와 코드가 공개된 딥시크-R1 이후, 중국 AI 생태계의 경쟁은 개별 모델 성능을 겨루는 단계에서 모델을 실제로 구동하고 확산시키는 시스템 경쟁으로 옮겨가고 있다. 단순히 모델 가중치를 공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추론 프레임워크 지원, 자국산AI 칩 최적화, 연산자 구현 공개를 함께 묶는 방식이다. 실제로 2025년 하반기 딥시크-V3.2 실험판이 공개되자 화웨이는 자체 플랫폼 어센드(Ascend)에서 추론 프레임워크 vLLM·SGLang 기반 적응 배포를 빠르게 완료하고, 관련 추론 코드와 연산자 구현을 오픈소스로 공개했다. 화웨이 어센드는 엔비디아GPU 대체재로 주목받는 중국의 대표 AI 반도체 플랫폼이다.
이 점에서 EU와 중국의 접근은 다르다. EU가 개방성, 공공성, 표준화, 전략적 자율성을 강조한다면, 중국은 기술 자립과 산업 내재화, 자국 플랫폼 중심의 생태계 확장에 더 무게를 둔다.
한국, 오픈소스SW에서 소버린 AI로
한국도 이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오픈소스SW 활성화 정책을 꾸준히 추진해 왔고, 2023년 소프트웨어 진흥전략을 거쳐 최근에는 소버린 AI와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로 국내 AI 역량 강화를 꾀하고 있다. 기업이 오픈소스AI 파운데이션 모델을 개발해 공개하도록 지원하고, AI 분야 오픈소스 생태계를 조성하려는 정책도 이어지고 있다.
다만 무게중심은 아직 모델 공개에 있다. EU식 조달·표준·공공 인프라 연계나 중국식 칩·배포 인프라 결합에 견주면, 생태계 전반을 아우르는 주권 설계로는 덜 통합돼 있다. 모델을 여는 단계에서 스택 전체를 여는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 남은 과제다.
시사점
오픈소스는 AI, 클라우드, 공공 인프라, 공급망 보안, 표준화 전반에서 기술 주권과 맞닿아 있다. 특히 AI 영역에서는 모델의 투명성과 검증 가능성을 높이고, 클라우드 영역에서는 특정 글로벌 사업자에 대한 의존을 낮추며 공공·민간의 선택권을 넓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 공공 인프라 측면에서는 공공 예산으로 개발된 소프트웨어를 재사용 가능한 자산으로 축적하게 하고, 공급망 보안 측면에서는 핵심 오픈소스 구성요소의 취약점과 국내 산업이 의존하는 소프트웨어 스택을 체계적으로 파악하는 계기가 된다. 표준화 측면에서도 국내 기업과 개발자 커뮤니티가 글로벌 기술 논의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로 기능할 수 있다.
물론 오픈소스 전략이 선언만으로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비영리 온라인 언론사 테크 폴리시 프레스(Tech Policy Press)는 최근 칼럼에서 EU의 오픈소스 전략을 유럽이 주권적이고 회복력 있는 디지털 미래를 구축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정책적 전환으로 평가하면서도, 전략의 성패는 명확한 실행 규범과 지속적인 이행에 달려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전략이 제시하는 방향성은 분명하지만, 오픈소스와 개방형 표준의 연계, 안정적인 유지보수 재원 확보, 전문 인력 양성, 오픈소스 하드웨어 지원 등은 구체적인 실행 과정에서 더욱 보완돼야 할 과제로 지목했다.
같은 테크 폴리시 프레스 칼럼에서는 EU가 제시한 7년간 20억 유로 규모의 투자만으로는 연간 2,640억 유로 규모의 독점 소프트웨어 의존 구조를 해소하기에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결국 오픈소스 전략의 성공 여부는 코드 공개 자체가 아니라 이를 지속 가능한 디지털 공공재로 발전시키고 생태계를 확장할 수 있는 정책적·재정적 뒷받침에 달려 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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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Reference
- https://commission.europa.eu/news-and-media/news/strengthening-europes-tech-sovereignty-2026-06-03_en
- https://digital-strategy.ec.europa.eu/en/factpages/eu-open-source-strategy
- https://www.opensourceforu.com/2026/01/openharmony-scales-from-codebase-to-national-infrastructure-platform/
- https://huggingface.co/blog/huggingface/state-of-os-hf-spring-2026
- https://www.ithome.com/0/886/722.htm
- https://www.techpolicy.press/how-the-eus-tech-sovereignty-package-finally-puts-open-source-to-the-t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