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의 눈이 돼 주세요”
2015년 01월 16일 (금)
ⓒ 블로터닷넷, 안상욱 기자 nuribit@bloter.net
시각장애인이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돕는 모바일 응용프로그램(앱)이 나왔습니다. 이름은 ‘비 마이 아이즈(Be My Eyes)’. 내 눈이 돼 달란 뜻이죠. 아, 로맨틱합니다. 누구한테 하는 말일까요? 지금 이 기사를 읽는 우리에게 하는 말입니다.
▲시각장애인과 자원봉사자 사이에 다리를 놓는 생활 봉사 앱 ‘비 마이 아이즈’ (홍보 영상 갈무리)
자원봉사, 자주하시나요? 솔직히 말해 저는 고등학교 졸업한 뒤로 단 한 번도 봉사활동을 한 적이 없습니다. 학생 때는 봉사점수를 채워야 하니 소방서나 주민센터에 가서 청소 같은 일을 하고 봉사인증서를 받아 학교에 내야 했으니까요. 자원봉사가 말 그대로 ‘자원’하는 일이 된 뒤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제 생각에는 이렇습니다. 봉사활동을 한다고 쉬는 날 시간을 따로 내기는 번거롭습니다. 또 교회 같이 단체에서 가는 게 아니면 개인이 봉사활동에 나서기도 마뜩잖습니다. 어디서 도움이 필요한지도 잘 모르겠고요. 무한도전 토토가 멤버를 봉사활동으로 이끈 사회활동가 겸 가수 션 씨처럼 저한테 같이 가자고 하는 사람도 주변에 없죠. 이래저래 봉사활동은 제게 썩 내키지 않는 일이 돼 버렸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그렇게 나눌 줄 모르는 이기심 덩어리는 아닙니다. 지하철에서 길 묻는 노인분이나 외국인한테 길도 잘 알려주고요. 버스 문턱에서 유모차 내릴 때 같이 들어주기도 합니다. 봉사활동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생활 속에서 작은 나눔에는 인색하지 않습니다. 저만 그런 건 아닐 거에요. 그죠?
▲시각장애인과 자원봉사자 사이에 다리를 놓는 생활 봉사 앱 ‘비 마이 아이즈’ (홍보 영상 갈무리)
저같이 본격적인 봉사활동은 부담스럽지만 소소하게 나눌 기회를 찾는 이를 위한 앱이 ‘비 마이 아이즈’입니다. ‘비 마이 아이즈’는 시각장애인과 자원봉사자를 영상통화로 연결해주는 비영리 오픈소스 모바일 앱입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시각장애인이 스마트폰으로 앞에 보이는 장면을 찍어서 영상통화로 자원봉사자에게 보여주면 자원봉사자가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말로 설명해주는 겁니다. 앱과 이름이 같은 비영리단체를 돕기 위해 로보캣이라는 덴마크 개발사가 만들었습니다.
사용법은 쉽습니다. 앱을 설치하고 페이스북 아이디나 구글 아이디로 로그인하면 무슨 역할을 할 건지 묻습니다. ‘나는 볼 수 있습니다’와 ‘나는 눈이 안 보입니다’ 2가지 단추 가운데 하나를 누르면 됩니다. 볼 수 있다고 하면 자원봉사자가 되는 거고요, 눈이 안 보인다면 사용자가 되는 겁니다. 저는 볼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멋진 소개 동영상이 지나가면 ‘비 마이 아이즈’ 앱을 사용하기 위해 3가지 기능을 허용해달라는 메시지가 나옵니다. 시각장애인이 도움을 요청하면 앱이 제게 알람을 보내도록 해야 하니 알림 기능을 켜줍니다. 또 시각장애인에게 주변 상황을 말로 설명해줘야 하니 마이크도 쓸 수 있도록 허락하고요. 마지막으로 카메라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자원봉사자의 모습을 시각장애인에게 보내지는 않지만, 양쪽에서 카메라를 열어야 영상통화가 작동한다는군요.
이제 설정이 끝났습니다. 누군가 도움을 요청하길 기다립니다. 도움을 많이 주면 포인트를 쌓을 수 있습니다. 포인트를 많이 쌓으면 레벨도 오릅니다. 레벨이 많이 오르면 뿌듯함도 커지겠지요. ‘비 마이 아이즈’ 개발사 로보캣 창업자 윌리 우는 포인트 시스템을 자원봉사자를 평가하는데 활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도 오늘 아침 가입했는데요. 시각장애인 770명이 가입했는데, 자원봉사자는 8천명이라고 합니다. 저처럼 작은 도움을 나누려는 분이 많네요. 앱이 올 1월13일 나왔는데 3일 사이에 1500건 도움이 오갔다고 합니다. 누군가 한국어를 쓰는 시각장애인분이 도움을 요청하면 아마도 제게 콜이 오겠지요.
윌리 우는 <기가옴>에 “덴마크에서 몇 달 전에 시험삼아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700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를 찾았다”라며 “애플도 앱스토어에서 ‘비 마이 아이즈’를 추천해 더 많은 봉사자를 모을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비 마이 아이즈에 우리 같은 자원봉사자만 있어선 안 되겠죠. 윌리 우는 앱에서 도움을 받을 시각장애인도 찾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자원봉사자만 찾는 건 아닙니다. 시각장애인이 우리 앱에 가입해야 도움을 줄 수 있잖아요. 그래서 주변에 시각장애인이 있는 분들 입소문을 내주시길 바랍니다. 그래야 그 분들이 필요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비 마이 아이즈’ 앱은 애플 앱스토어에 서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다른 플랫폼으로는 개발 중이라고 합니다. 영어와 한국어 등 28개 언어를 지원한다고 나오는데 한국 앱스토어에서 내려받아도 영어로만 나오네요. 앱 자체가 오픈소스니까 번역에 힘을 보태도 좋겠습니다. 독자님도 누군가의 눈이 되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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