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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人] 윤종민 “재미 좇아 개발자 길로”

OSS 게시글 작성 시각 2013-07-16 15:09:19 게시글 조회수 4200

2013년 07월 16일 (화)

ⓒ 블로터닷넷, 이지영 기자 izziene@bloter.net



지금으로부터 약 28년 전, 학교에 막 애플 컴퓨터가 보급될 무렵이었다.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집에 컴퓨터를 보유하고 있는 가구가 많지 않았다. 컴퓨터 자체가 귀했다. 그 덕에 학교에 몇 대 없는 컴퓨터는 아이들에게 호기심 대상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화면에 키보드로 명령어를 몇 줄 입력하면 작동하는 생명체. 윤종민 윈드리버 책임연구원은 10살 때 이 자그마한 생명체에 마음을 빼앗겼다.


“명령어만 제대로 넣으면 결과가 나온다는 게 너무 맘에 들었습니다. 왠지 컴퓨터가 제 말을 잘 듣는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구요. 컴퓨터 학원에 2달 정도 다니면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화려한 그래픽의 게임도, 네이버 같은 포털 웹사이트도 없던 때였다. 윤종민 책임연구원은 까만 배경에 코드를 입력하는 게 너무 즐거웠다. 외국에서 게임 소스코드 공개된 걸 한줄한줄 따라 치면서 프로그래밍과 친해졌다. 코드 몇 줄이 모여 하나의 실행 프로그램이 되는 과정이 마냥 신기하게만 다가왔다. 이 때 느낀 ‘즐거움’ 하나로 윤종민 책임연구원은 지금까지 개발자로 활약하고 있다.


windriver


프로그래밍, 혼자서도 할 수 있다

윤종민 책임연구원은 거의 독학으로 프로그래밍을 배웠다. 컴퓨터 잡지를 사서 그 안에 있는 소스코드를 따라하거나 책을 빌려 읽는 식으로 지식을 쌓아나갔다. 컴퓨터도 부모님 도움 없이 스스로 장만했다.


컴퓨터 한 대 값이 웬만한 집 한 달 생활비 수준이었을 때다. 부모님께 차마 컴퓨터를 사달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포기하기엔 컴퓨터가 너무 좋았다. 윤종민 책임연구원은 우승 상품으로 컴퓨터를 주는 소프트웨어 경진대회를 노렸다.

“중학교 1학년 무렵, 소프트웨어 경진대회에 나가서 컴퓨터를 받았습니다. 이 당시 경진대회는 요즘같은 공모전 방식이 아니었거든요. 문제를 주고 이를 프로그래밍 코드로 빠르고 정확하게 만들면 됐습니다.”


컴퓨터가 생기면서 윤종민 책임연구원의 프로그래밍 실력도 날개를 달았다. 코딩도 하고 네트워크도 공부하면서 실력을 쌓아갔다. 모뎀을 연결해 채팅도 하면서 여러 도메인을 돌아다니는 게 윤종민 책임연구원의 놀이였다.


“남들이 보면 그게 어떻게 놀이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전 재미있었어요.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었거든요. 프로그래밍도 어찌보면 컴퓨터가 일할 수 있게 논리적으로 말을 만들어 입력하는 행동이에요. 남들이 만든 소스코드 따라하고, 책을 읽으며 공부하면 금방 배울 수 있습니다.”


1995년, 리눅스 운영체제를 만나다

윤종민 책임연구원은 대학교에서 기계공학을 배우고 대학원에선 수치해석을 전공했다. 넓은 의미에서 공대 전공일지 몰라도 엄밀히 따지면 컴퓨터 공학과는 거리가 멀다. 비전공자인 셈이다.


“지금 돌이켜 봤을 때, 실수가 아닌가 해요. 고등학교 땐 컴퓨터에서 뭘 더 배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감히 했거든요. 그래서 뭔가 움직이는 걸 만들어보고픈 욕심이 생겼고, 기계공학을 선택했지요.”


하지만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리는 없는 법. 기계공학과에서도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좋아하는 사람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윤종민 책임연구원은 이들과 어울리고, 컴퓨터 관련 동아리에 들어가면서 프로그래밍을 계속했다. 낮에는 과 공부를, 저녁에는 프로그래밍 공부하는 날이 이어졌다. 커뮤니티 활동을 하면서 컴퓨터 지식도 넓어졌다.


윤종민 책임연구원은 1995년 처음 리눅스 운영체제를 접했다. 애플리케이션을 공부하고, 애플리케이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끝을 파고들다보니 운영체제를 만났다. 마침 컴퓨터 잡지 부록으로 리눅스 운영체제 설치 CD가 있었다.


“설치하는 과정이 재미있더군요. 전 이 때 도스를 쓰고 있었던 터라 리눅스 환경이 반가웠습니다. 대학교 4학년때부터 본격적으로 공부를 했지요. 리눅스 공동체 세미나에도 참석하고, 자유소프트웨어 관련 활동도 시작했습니다.”


졸업 후 진로는 자연히 리눅스 관련 일로 결정됐다. 윤종민 책임연구원은 칼데라시스템즈라는 리눅스 회사에 취직했다. 국내에 리눅스 붐이 일 때였다. 윤종민 연구원은 회사에서 uC리눅스를 배웠다. 메모리 관리 유닛이 없는 CPU가 있는데, 이 CPU 위에 올라가는 걸 uC리눅스라고 한다. 보통 저가형 네트워크 장비를 만들 때 쓰인다.


윤종민 수석은 이 때부터 쭈욱 리눅스 관련 개발자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칼데라시스템즈를 나와서는 리눅스 플랫폼 기반의 DVR를 만들었다. 2006년에는 미지리서치라는 국내 굴지의 리눅스 회사에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윈드리버가 미지리서치를 인수하면서, 윤종민 책임연구원의 소속도 윈드리버가 됐다.


지금도 개발이 재미있다

개발 10여년차, 윤종민 책임연구원도 개발이 지겨울 때가 있었다. 품질관리를 위해 여러차례 시나리오 테스트를 할 땐 짜증도 나곤 했다. 해외 개발자들과 같이 일할 땐 시차 차이 때문에 힘들기도 했다.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나고 되돌아보면, 모든 과정이 즐겁게 다가오는 거 있지요. 어떻게 보면 전 취미로 하던 게 직업이 된 사람입니다. 모든 순간이 좋았다고 말할 순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개발이 점점 더 좋아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종민 책임연구원은 요즘 고민이 많다. 어떤 개발자가 될 지, 앞으로 어떻게 개발을 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코앞으로 다가와서다. 국내에서 개발자는 40대가 가까워지면 한 번쯤 선택의 순간을 맞이한다. 프로젝트 매니저가 돼 관리자로 일할 지, 계속 프로그래밍하는 개발자가 될 지를 고민한다.


“제 욕심일지도 모르겠지만, 개발자로서 뭔가 끝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개발자로서 항상 최신 기술 맨 앞에 서고 싶다고 할까요. 아무래도 프로젝트 매니저가 되면 정보에서는 거리거 멀어지겠지요.”


관리자와 개발자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란 힘들다.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프로젝트 매니저가 사람을 관리하는 일을 우선한다면, 개발자는 어떤 기술을 활용해서 개발할지를 우선해야 한다. 가고자 하는 진로에 따라 목표가 미묘하게 달라진다.


“서로 입장이 상충되기 마련이거든요. 개발을 잘 하는 프로젝트 매니저는 고민이 많을 겁니다. 고객 요청과, 업무와 개발자 상황을 모두 고려해 상황을 살펴야 하기 때문이지요. 이익관계가 상충되는 데, 모두를 충족시킬 순 없거든요.”


윤종민 책임연구원은 아직 답을 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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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 http://www.bloter.net/archives/158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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