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인터넷 시대, 뼈대는 비트코인 기술
2015년 01월 19일 (월)
ⓒ 블로터닷넷, 안상욱 기자 nuribit@bloter.net
# 장면 1.
세제가 떨어졌다. 똑똑한 세탁기는 세제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평소 거래하던 슈퍼마켓에 주문을 넣는다. 세탁기는 소모품 구매 계좌에 보관 중인 가상화폐로 세제값을 치른다. 슈퍼마켓 주인은 태블릿PC로 세탁기가 보낸 주문을 확인한다. 물건값이 입금된 걸 실시간으로 확인한 주인은 세제 배달 주문을 발주하고 세탁기에 배달 예정 시각을 알려준다. 세탁기는 슈퍼마켓 주인에게 결제가 끝나 물건을 배송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집주인에게 세제를 주문하고 결제도 마쳤으며 며칠 안에 집으로 배송될 것이라고 알려준다.
# 장면 2.
제 아무리 똑똑한 세탁기도 고장나지 않을 도리는 없다. 하지만 똑똑한 세탁기는 자기가 알아서 수리 기사를 부른다. 자체 점검 시스템을 작동해 어느 부위가 고장났는지 확인한다. 모터가 고장났다. 모터 보증기간이 언제까지인지 본다. 아직 보증기간이 남았다. 주변 수리점을 확인해 출장 수리를 와 달라고 요청한다. 아직은 보증기간이니 따로 비용은 안 내도 된다. 만일 보증기간이 끝났다면 집주인에게 수리점과 따로 계약을 맺어야 한다고 알리고, 수리점에는 견적이 얼마나 나올지 물어본다. 수리점에서 견적을 제시하면 집주인에게 이를 전달하고 수리점과 수리 일정을 조율할 수 있도록 채팅창을 연다.
공상과학 소설 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허무맹랑한 소리는 아니다. IBM이 올해 국제소비자가전박람회(CES)에서 발표한 시나리오다. IBM은 삼성전자와 손잡고 개발한 사물인터넷(IoT) 플랫폼 어뎁트(ADEPT, Autonomous Decentralized Peer-to-Peer Telemetry)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고서로 정리해 공개했다. 앞서 예로 든 장면은 IBM이 보고서에 직접 적은 응용 사례다. 삼성전자가 타당성을 확인했다. 1월7일 IBM이 공개한 보고서를 인용해 가상화폐 전문매체 <코인데스크>가 1월17일 전한 소식이다.
▲사물인터넷 (출처 : 위키미디어 CC BY Wilgengebroed)
블록체인 기술로 자동 IoT 플랫폼 꾸린다
IBM은 가상화폐 비트코인을 작동시키는 핵심 기술인 블록체인을 응용해 사물인터넷 기기가 서로 직접 소통하는 P2P 네트워크를 꾸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블록체인은 모든 비트코인 거래 내역이 기록된 공공 장부다. 기록과 검증에 모든 비트코인 사용자가 참여하기 때문에 한 번 생성한 거래기록은 위조나 변조가 불가능하다. 비트코인을 사용하는 이가 늘어날 수록 안정성이 강화된다.
블록체인은 오픈소스 프로그램이다. 컴퓨터 프로그램이니 당연히 코딩도 할 수 있다. 블록체인을 십분 활용하면 사람 없이도 알아서 가상화폐를 통해 운영되는 회사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블록체인은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데 필요한 자원을 네트워크에 참여한 사용자 컴퓨터에서 끌어모아 쓴다. 대신 그 대가로 소정의 가상화폐를 제공한다. 가장 널리 알려진 가상화폐가 비트코인이다.
IBM은 3가지 P2P 서비스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P2P 파일 공유 서비스 비트토렌트와 P2P네트워크로 아마존웹서비스(AWS)같은 IaaS를 구현한 에테리움, P2P 암호화 메신저 텔레해시다.
IBM이 블록체인 네트워크 위에 사물인터넷 플랫폼을 꾸린 방식은 다음과 같다. 삼성전자가 똑똑한 세탁기를 만든다고 치자. 삼성전자는 그 세탁기를 사물인터넷 블록체인에 등록한다. 이때 등록된 블록체인 주소는 세탁기 고유번호가 된다. 블록체인에 등록된 세탁기는 가상화폐 지갑도 함께 갖는다.
집주인이 똑똑한 세탁기를 집에 설치하고 인터넷을 연결한다. 세탁기는 사물인터넷 블록체인과 통신하며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주변에 다른 기기를 찾는다. 세탁기는 늘 전원이 켜져 있고 늘 인터넷에 연결된다. 부피가 크니 많은 컴퓨팅 자원도 포함할 수 있다. 그래서 IBM은 세탁기를 집안 사물인터넷 허브로 꼽았다. 똑똑한 세탁기는 사물인터넷 블록체인을 모두 복사하고 검증하며 집안 다른 기기에 공유해 준다. 또 다른 기기기 자원을 공유하고 가상화폐로 서로 가치를 주고 받는 시장 역할도 한다.
하지만 모든 사물인터넷 기기에 세탁기 같은 역할을 기대하긴 어렵다. 기껏해야 물 온도를 확인해주는 똑똑한 컵에 수십GB에 달하는 블록체인 데이터를 저장하는 것으 불필요하다. 그래서 IBM은 사물인터넷 기기를 크게 3가지 단계로 나눴다. 간편 기기(light peer)와 표준 기기(standard peer), 기기 거래소(peer exchange)다. 세탁기는 3번째 기기 거래소 역할을 한다.
▲집안 사물인터넷 허브 역할을 하는 '기기 거래소(peer exchange)' 구조
아두이노나 라즈베리파이 같이 성능이 그리 좋지 않고 데이터를 많이 담지 못하는 사물인터넷 기기는 간편 기기로 본다. 똑똑한 컵도 마찬가지다. 사소한 기능을 하는 사물인터넷 기기는 블록체인 조각을 쪼개 블록체인에 컴퓨팅 자원을 공유하지 않는다. 대신 세탁기나 다른 사물인터넷 기기와 통신 내역을 쌓으며 신뢰도를 높인다. 신용을 증명할 방법이 없으니 직접 거래 내역을 누적하며 신용도를 확보하는 셈이다.
똑똑한 컵보다 조금 더 똑똑한 기기는 블록체인 일부를 보관하고 거래 기록 검증에도 힘을 보탠다. 이들을 표준 기기라고 부른다. IBM은 반도체 제조 비용이 내려가 컴퓨터 성능이 발달하고 저장 비용이 내려감에 따라 몇 년 안에 거의 모든 기기가 표준 기기가 되리라 내다봤다. 표준 기기는 간편 기기 기능을 보조하고 다른 사물인터넷 기기 상태를 점검하는 역할도 맡는다.
"사물인터넷의 훗날 모습은 P2P 네트워크"
IBM은 왜 사물인터넷 네트워크를 P2P 방식으로 구현하려고 했을까. 중앙집중된 네트워크에 수십억개에 이르는 사물을 연결해 관리하는 것은 비용이 많이들고 위험하기 때문이다. 서버 한 곳에 연결된 기기는 그 서버가 고장나면 모두 먹통이 된다. IBM은 네트워크 구현 비용을 낮추면서도 안정성을 높이고, 수많은 기기를 모두 지원할 수 있는 길이 비트코인이 보여준 P2P 분산 네트워크라고 봤다.
세제가 떨어지면 알아서 세탁기가 알아서 주문하고, 가전제품이 고장나면 알아서 고장 부위를 확인해 수리 기사를 부른다. 이번달에 전기를 너무 많이 써서 누진세를 물기 직전이라면 세탁기가 TV에 전원을 내리라고 요청한다. TV는 지금이 집주인이 주로 TV를 보는 시간대이기 때문에 전원을 내릴 수 없다고 판단하고 세탁기의 부탁을 거부한다. 세탁기는 동네 스마트그리드 전력망에 접속해 전기를 빌려주면 다음에 몇 번 세탁물을 돌려주겠다고 제안한다. 이웃 주민이 세탁기가 내놓은 거래 조건을 받아들이고 전기를 내준다.
사물인터넷 전광판은 광고 시간을 경매에 부친다. 광고 시간을 낙찰받은 이는 파일을 전광판에 업로드한다. 전광판 주인이 광고를 확인하고 이상 없다고 전광판에 알려주면 경매 계약대로 전광판에 광고를 띄운다. 광고비는 전광판이 가상화폐로 알아서 받아둔다. 사물끼리 직접 소통하고 거래까지 마치는 것은 이들이 직접 소통하고 가상화폐까지 주고받을 수 있는 P2P 네트워크에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이것도 모두 IBM이 제시한 활용 예다.
IBM은 어댑트 기술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IBM 연구팀은 사물인터넷 플랫폼 어댑트를 “컴퓨터 발명 이후 가장 큰 기술적 진보”라고 불렀다.
“우리는 어댑트 같은 분산 시스템이 지구를 더 똑똑하면서도 더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경제적인 가능성도 클 겁니다. 이런 기술적 발전은 범용 컴퓨터와 거래처리시스템(TPS) 이후로 가장 큰 발전을 보여줍니다."
쌓인 숙제, 오픈소스로 풀자
어댑트 플랫폼은 아직 개념 증명 단계다. 기술적으로 구현할 수는 있지만 해결할 문제도 많이 남았다는 뜻이다. 일단 어댑트 블록체인 네트워크가 안정성을 확보할 만큼 이를 지원하는 기기를 충분히 보급하는 게 과제다. 또 사물인터넷 기기가 주고받는 데이터가 너무 커지지 않도록 표준을 꾸리는 것도 필요하다.
IBM은 어댑트 플랫폼을 함께 완성해 가자며 외부 개발자에게 손을 뻗었다. IBM은 개념 증명 차원에서 개발한 어댑트 핵심 기능과 이를 활용할 수 있는 API를 만들어 조만간 깃허브와 IBM 블루믹스에 오픈소스로 공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IBM 보고서 '어댑트: 사물인터넷 현장 관점' 보기(Scri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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