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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위기에 빠진 위키피디아를 건져올린 그녀

OSS 게시글 작성 시각 2015-10-12 18:35:05 게시글 조회수 2847

2015년 10월 07일 (화)

ⓒ 블로터닷넷, 이성규 기자 dangun76@bloter.net



그는 여성이다. 러시아 여성이다. 컴퓨터 과학을 전공한 러시아 여성이다. 도입부터 여성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 위키피디아의 현재와 미래를 독해하기 위함이다.


만 37세의 여성 라일라 트레티코프는 위키피디아의 실질적 지휘자다. 2014년 5월 위키미디어재단 사무총장으로 취임하면서 수렁에 빠진 위키피디아의 운명이 그의 손에 맡겨졌다. 지미 웨일즈는 더 이상 없다. 그는 이미 일선에서 물러났다. 지미 웨일즈에겐 위키미디어재단 명예이사라는 직함이 남아있을 뿐이다. 위키미디어재단은 위키피디아를 비롯해 위키뉴스, 위키유니버시티 등 수많은 위키 프로젝트를 운영·관리하는 비영리재단이다.


라일라 트레티코프는 다시 강조하지만 여성이다. 남성과 백인이 바글대는 8만5천명 자발적 에디터들 틈에서 그들을 달래고 설득하고 돌파하는 선봉에 서 있는 여성이다. 위키피디아를 남성적 시각의 편협함에서 구출해야 할 사명을 부여받은 여성이다. 연간 6천만 달러의 예산, 상근 직원 215명의 위키미디어재단을 끌고가야 하는 수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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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이후 위키미디어재단을 이끌고 있는 라일라 트레티코프.(사진 출처 : 위키미디어재단 홈페이지)


남성 백인 에디터 위주의 자발적 에디터들


위키피디아 자발적 에디터 가운데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15% 남짓이다. 15%로는 여성의 시각을 개방적 지식의 바다에 담아내기 어렵다. 게다가 남성 에디터들은 편집 작업이 일부 기각될 때마다 “페미니스트의 음모가 있다”고 주장할 정도로 악명이 높다. 그렇다고 내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들을 붙잡아두면서도 성적, 인종적 다양성을 확보해야할 과제가 그 앞에 놓여있다.


물론 이전 사무총장인 수 가드너도 여성이었다. 저널리스트 출신의 수 가드너는 위키미디어재단의 규모를 수배 확장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워다. 재단 지원금 규모도 큰폭으로 늘려놨다. 하지만 전세계적 지식 커뮤니티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데는 미흡했다. 수 가드너가 자신의 후임으로 라일라 트레티코프를 위키미디어 사무총장에 세운 이유이기도 했다.


라일라 트레티코프의 강점은 소프트웨어와 협업에 있다. 그는 미국으로 건너와 허드렛일을 하며 어렵게 돈을 모았고 대학까지 진학했다. 머신러닝 분야에서 발군의 실력을 인정받아 1999년 썬마이크로시스템스에 입사했고 이듬해엔 그록디지털이라는 마케팅 기술 기업을 창업하기도 했다. 그는 위키미디어 사무총장으로 오기 전까지 18년 동안 소프트웨어 개발과 오픈소스 커뮤니티에 열정을 쏟아부었다.


소프트웨어를 전공한 그의 이력은 위키피디아의 미래를 그리는 데 여러모로 기여하고 있다. 그는 2014년 5월 사무총장 취임 이후 위키피디아를 미디어 기업에서 테크놀로지 기업으로 탈바꿈시키겠다고 공언했다. 그 첫 번째 작업이 에디팅 시스템의 개선이다.


에디팅 시스템은 위키피디아 지식 커뮤니티의 심장이다. 자발적 에디터들의 집단적 지식이 디지털화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첫 관문이다. 에디팅 시스템을 통해 지식이 차곡차곡 쌓이고 논박을 통해 잘못된 지식이 교정된다.


에디팅 시스템은 수 가드너 시절인 2013년 한 차례 개편이 좌절된 ‘흑역사’가 있다. 보다 간편한 인터페이스로 설계해 공개했지만 버그 투성이에 과도하게 단순하다는 에디터들의 지적을 받고 이전 시스템으로 되돌려졌다. 자발적 에디터 집단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이 에디팅 시스템이 모바일 시대를 맞으며 위기에 봉착했다. 대부분의 지식 등록은 PC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모바일 시대로 접어들면서 자발적 지식 생산 커뮤니티의 참여도가 낮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모바일 시대와 위키피디아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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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피디아 활성 에디터 수 변화 그래프.(출처 : 위키미디어재단 블로그, 퍼블릭 도메인)


그는 2014년 8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우리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지식 구축 커뮤니티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규 에디터에게 기술적 능력을 요구하지 않으면서 더 쉽게 에디팅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도 했다. 이는 자발적 에디터의 다양성을 강화하면서 동시에 모바일을 통해서도 보다 쉽게 지식 생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그의 포부가 담긴 발언이었다.


포부는 곧 실행에 옮겨졌다. 위키피디아 iOS앱과 안드로이드 앱을 한층 세련되게 개편했다. 그 덕에 위키피디아 정보 생산 및 보강 작업의 20% 정도가 모바일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를 위해 그는 35명의 개발자를 추가로 채용했다. 그는 올해 4월 <타임>과의 인터뷰에서도 “난 우리 제품의 방향성 그리고 기술적 역량 강화에 상당부분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노력을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2007년 이후 꾸준히 감소했던 적극적 에디터들 수가 2014년 하반기를 기점으로 다시 상승세를 그리기 시작했다. 소프트웨어 실력을 무장한 라일라 트레티코프의 정면 돌파가 조금씩 먹히기 시작한 것이다. 버그 투성이라는 지적이 더 이상 들려오지 않는다.


머신러닝 경험도 위키피디아의 진화에 솔솔찮게 기여하고 있다. 이미 위키피디아의 기사 다수가 기계에 의해 수정되거나 업데이트 된다. 최근 들어서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위키피디아 지식 생산 소프트웨어가 곳곳에서 등장하면서 이에 대한 대응 방안이 절박해졌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스웨덴의 한 개발자가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270만개의 기사를 자동으로 만들어낸 사례를 소개한 적도 있다.


라일라 트레티코프도 이런 현실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위키피디아는 이미 2천개의 자동화 봇이 기사를 업데이트 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 봇의 역할은 스펠링 교정, 주요 센서스 데이터 업데이트, 반달리즘 대한 대처 등에 한정돼 있긴 하다. 그는 2014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컴퓨터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처리하는 데 인간보다 절대적인 우위에 있고 그것이 우리가 특정 분야에서 기계를 활용하는 이유”라며 “봇이 정보 확인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영역이 존재하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멈추지 않는 자동화 ‘봇’과의 전쟁

미국 샌프란시스코 위키미디어재단 사무실.(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위키미디어재단 CC BY-SA 3.0)

미국 샌프란시스코 위키미디어재단 사무실.(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위키미디어재단 CC BY-SA 3.0)

위키피디아는 밖으로 또 다른 봇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상대는 기업과 정부다. 막대한 자본력을 자랑하는 기업과 정부는 준인공지능으로 무장한 보이지 않는 봇으로 위키피디아를 공격한다. 왜곡된 정보를 등록하거나 편향된 내용으로 변경하는 시도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정부와 기업이 감행하는 반달리즘은 막아내기도 쉽지 않다. 트레티코프의 머신러닝 경험이 지금 시점에 절실하게 필요해진 상황이다.


트레티코프의 역할은 언뜻 유엔 사무총장을 연상케 한다. 전세계 모든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민주적으로 수렴하면서 외부 반달리즘으로부터 지식의 보고를 방어해야 한다. IS(이슬람국가)의 반달리즘에 유엔이 취하는 태도처럼 말이다. 다양한 인종과 소수자의 의견을 대변해야 하면서도 자발적 에디터의 활동도 진작시켜야 한다. 풀어내기 쉽지 않은 산적한 과제를 품고 모바일 시대 위키피디아의 청사진도 그려내야 한다.


언론들은 그를 위키피디아의 구원자로 묘사한다. 어쩌면 지금 시점에 소프트웨어에 정통한 여성을 위키미디어 사무총장에 앉힌 것은 행운일지도 모른다. 정보 속에 스멀스멀 스며든 남성적 시각을 털어내고 여성의 관점을 입히는 작업, 더 다양한 지식 생산 커뮤니티를 꾸려내기 위해 에디팅 시스템의 진입장벽을 낮춰가는 작업, 이 모든 것이 그에겐 힘겹지만 익숙한 과정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그의 장점은 뼛속 깊이 체화된 정보의 자유에 대한 갈망이다. 어린 시절 소련의 글라스노스트를 지켜보며 그것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체감했던 그다. 만약 그의 삶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키워드를 뽑아낸다면 ‘자유’라는 두 글자일 것이다.


라일라 트레티코프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글로벌 서밋 발표를 위해 10월15일 한국을 방문한다. ‘위키백과의 리-챌린지(re-challenge)’를 화두로 그의 경험담을 세세하게 소개할 예정이다. 위키피디아의 새로운 미래를 그려가는 그의 철학과 고민을 현장에서 직접 들어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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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 http://www.bloter.net/archives/240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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