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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아름다움 나누는 일, 나눔글꼴”

OSS 게시글 작성 시각 2013-10-14 16:35:21 게시글 조회수 4292

2013년 10월 10일 (목)

ⓒ 블로터닷넷, 정보라 기자 borashow@bloter.net



네이버에 칭찬하고 싶은 게 하나 있다. 주가 고공행진보다 가치 있는 일이다. 바로 나눔글꼴이다.


나눔글꼴은 네이버가 배포하는 무료 한글 글꼴이다. 2008년 ‘나눔명조’와 ‘나눔고딕’을 시작으로 개발자를 위한 ‘나눔고딕코딩’, 붓과 펜으로 흘려 쓴 듯한 ‘나눔손글씨’, 인쇄할 때 잉크를 절약하는 ‘나눔글꼴에코’로 구성됐다. 그리고 2013년 휴대폰 화면에 최적화한 ‘나눔바른고딕’이 새로 나왔다.


나눔글꼴은 어느새 우리 주변에 퍼졌다. 서울시 지하철 안내판이 나눔글꼴이다. TV 프로그램 자막에 나눔글꼴이 종종 나온다. 과자 봉지 뒷면에 깨알같이 적힌 영양성분이나 제품 정보도 나눔글꼴로 쓰인다. 안드로이드 4.2 기본 글꼴, 우분투 기본 글꼴, 크롬OS 기본 글꼴도 나눔글꼴이다. 블로터닷넷도 기본 글꼴을 나눔글꼴로 정했다.


네이버는 2008년 나눔명조와 나눔고딕을 내놓을 때 지금 상황을 예상했을까.


“그땐 제가 주도하지 않았어요. 전 2010년부터 한글 캠페인과 글꼴 캠페인을 맡았습니다.”


이런, 그 사이 담당자가 바뀌었다. 조수용 전 크리에이티브마케팅&디자인 본부장이 나가고 손혜은 브랜드익스피리언스(BX)1팀장이 나눔글꼴 책임자가 됐다. 그는 2010년부터 한글날 맞이 각종 캠페인을 기획하고 꾸린다.


손혜은 네이버 BX1팀장 디자이너
▲손혜은 네이버 BX1 팀장


저작권 빗장 걷고 무료 배포

시작을 함께하지 않아도 당시 사연은 잘 알고 있을 터. 손혜은 팀장에게 네이버가 한글 글꼴을 만든 까닭을 물었다.


“네이버가 한글을 기반으로 해 1등 포털로 성장했어요. 그만큼 책임감을 느꼈죠. 한글로 성장했는데 한글을 이용해 사회에 되돌려줄 게 없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한글 글꼴이 쓸만한 게 없고, 있어도 전부 유료라 일반 디자이너나 소규모 업체가 쓰기엔 부담스러웠죠. 예쁘지 않은 글꼴로 인쇄하고 영상을 만드는 것도 안타까웠고요. 글꼴을 만들면 시각 문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무료로 배포할 마음을 처음부터 먹었단다. 그러다 2010년 ‘무료’란 개념을 좀 더 구체적으로 밝혔다. 글꼴을 내려받고 쓰는 것도 무료요, 수정하는 것도 무료, 수정한 걸 다른 사람에게 뿌리는 것도 무료로 바꿨다. 책이나 디자인 용품, 홈페이지, 광고, 간판 등에 쓸 때에도 네이버에 허락을 구하지 않고 나눔글꼴을 무료로 내려받아 쓰게 했다. 글꼴에 적용하는 이런 라이선스가 오픈폰트라이선스(OFL)다.


오픈폰트라이선스를 따르는 글꼴에는 ‘나눔명조로 만든 책을 팔아도 되나요?’나 ‘앱 기본 글꼴이 나눔글꼴인데 괜찮나요?’란 식으로 일일이 만든이에게 문의하지 않아도 된다. 손혜은 팀장도 “글꼴 자체가 수익이 되는 아이템만 아니면 뭐든 상관없다”라고 말했다.


그래도 미심쩍어할 독자를 위해 손혜은 팀장의 설명을 덧붙인다.


“무료 글꼴을 모아서 유료로 판다든지, 웹폰트 서비스를 해서 유료로 파는 건 안 되요. 스트리밍 방식으로 글꼴을 제공하고 과금하는 웹폰트 있잖아요. 거기에 나눔고딕이 들어가면, 나눔고딕을 쓰는 사람은 돈을 내야 하죠. 그런 경우를 제외하고 나눔글꼴로 앱을 만들거나, 앱에 탑재하고, 카메라 앱에 글꼴 꾸미기 기능을 넣었는데 나눔글꼴로 한다거나 하는 건 상관 없어요. 오프라인에서 인쇄하거나 쇼핑몰에서 나눔글꼴 쓰는 것도 상관 없고요.” (나눔글꼴의 라이선스를 더 알고 싶다면 ☞이곳을 방문해보자.)


오픈폰트라이선스 덕분인지, 나눔글꼴은 다양한 곳에서 쓰인다. 손혜은 팀장은 일상 곳곳에서 나눔글꼴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말했다. “한번은 여수 근처 섬에 갔는데요. 그곳 절에 있는 안내 표지판이 나눔글꼴이었어요. 그 정도로 전국 방방곡곡, 오프라인, 온라인, 상가… 아, 과자 포장지 뒷면에 있는 설명도 나눔글꼴이 많아요. 2008년에는 이런 사례가 많지 않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정말 많이 보여요.” 나눔글꼴의 인기를 짐작케 한다.


한글 글꼴 시장을 키울 씨앗

사회에 도움을 주려고 만든 나눔글꼴이 글꼴 시장을 해치진 않을까. 나눔글꼴이 없다면 윤디자인연구소나 산돌커뮤니케이션, 한양정보통신, 폰트릭스 등에서 글꼴을 살 사람들이 나눔글꼴을 써버릴 테니 말이다. 그럼 글꼴 회사는 자기 시장을 갉아먹을 경쟁자를 스스로 만든 셈인가.



▲그동안 나온 나눔글꼴. 나눔바른고딕과 나눔에코, 나눔손글씨, 나눔고딕, 나눔명조가 있다. 위 그림에 없는 나눔고딕코딩은 나눔고딕이 바탕이다. 영어 소문자 i와 l, 대문자 I, 숫자 1을 구분하기 쉽게 만드는 식으로 개발 환경을 고려해 만들었다.


이 의문에 손혜은 팀장의 답을 들려주기 전, 나눔글꼴 제작 과정을 먼저 밝혔다. 네이버는 나눔글꼴을 직접 만들지 않는다. 글꼴 전문 업체에 ‘이러저러한 글꼴을 무료로 배포할 건데 얼마에 만들어달라’고 의뢰하는 거다. 그래서 나눔고딕은 산돌커뮤니케이션, 나눔바른고딕은 폰트릭스처럼 글꼴마다 만든 회사가 다르다. 네이버가 나눔글꼴에 대한 생각을 알려주면 글꼴회사는 거기에 맞춰 글꼴을 만든다. 이 과정이 약 1년 걸린다. 내부 의사 결정 과정을 빼고서 1년이다. 네이버가 글꼴 회사와 일하는 기간이 1년인 셈이다. 서로 생각을 듣기엔 충분한 시간이겠다.


손혜은 팀장은 글꼴 회사에 들은 얘기를 들려줬다. “시장을 갉아먹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소비자가 글꼴을 보는 안목이 높아지면 더 좋은 글꼴을 찾게 되고, 길게 보면 시장이 커지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패션, 웹디자인을 보면 지금이 디자인의 끝이라고 생각하지만, 항상 더 좋은 게 나타나죠. 글꼴 회사는 글꼴도 그럴 거라고 본 거겠죠. 나눔글꼴이 글꼴 시장을 고도화하고 키울 것으로 생각한대요. 그래서 나눔글꼴을 만드는 데 참여한다고 들었어요.”


잔손질 많이 들고 노하우 필요한 고도 작업

나눔글꼴 중 가장 인기있는 나눔고딕은 인쇄용과 PC용으로 나뉜다. 인쇄도 인쇄지만, 모니터로 볼 때를 고려해서다. 그동안 글꼴은 주로 인쇄하는 걸 염두하고 나왔다. 종이에 잉크가 흩뿌리며 번지는 효과가 나타나리라고 예상하고 만든 글꼴이란 얘기다. 이런 글꼴을 모니터에서 보면 또렷한 맛이 나질 않는다. 이런 모습을 디자이너는 ‘지글지글하다’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눔고딕은 이 현상을 피하려고 한땀한땀 작업한 글꼴이다.


한땀한땀이란 단어는 농담이 아니다. 모니터에선 0.5cm도 안 되는 ‘ㅇ’을 만들려고 글꼴 디자이너는 모니터만하게 ‘ㅇ’을 확대하여 작업한다. 글꼴 회사를 지켜본 손혜은 팀장의 설명을 들어보자.


“인쇄용 글꼴을 화면에 띄우면 찌글찌글해요. 계단 현상도 보이고요. 그 계단 현상을 부드럽게 작업하는 걸 ‘매뉴얼 힌팅’이라고 해요. 그건 모든 글씨마다 일일이 작업해서 한 파일에 넣는 거예요. 이렇게 돼 있는 글꼴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화면에 보이기에 적합한 글꼴도 많지 않은 거죠.”


 


▲글자를 크게 확대하면 곡선 부분이 매끄럽지 않고 계단식으로 그려진 걸 알 수 있다. 글꼴의 곡선을 또렷하게 보이려고 하는 작업이 매뉴얼 힌팅이다.


그는 위 얘기를 하면서 자기 가슴팍보다 2배 큰 모니터를 그렸다. 그동안 네이버와 작업한 글꼴 회사는 1만1172자를 이렇게 작업했다는 얘기다. 한글만 세어서 이만큼이고 한자 4888자, 영문 94자, 특수기호 986자까지 더하면 엄청난 양이다. 여기에 일반 글자와 진한 글자를 만들고, 나눔고딕과 나눔명조처럼 더 진한 글자까지 3가지 버전으로 만든 것도 있다.


네이버는 나눔고딕을 모니터에서 볼 때 보기좋게 만들고 나서 자사 서비스에 넣었다. 전자책 서비스인 ‘네이버북스’의 기본 글꼴로도 활용한다.


모바일에 안성맞춤, 나눔바른고딕

완벽할 것 같던 나눔고딕에서 아쉬운 점이 보인 건 스마트폰이 퍼지면서다. 모니터에서 또렷하게 보이라고 공들여 그린 보람이 스마트폰에선 드러나지 않았다.


“큰 화면에서 보면 세심하게 작업한 게 드러나지만, 스마트폰으로 오면 그런 건 잘 드러나지 않더군요. 오히려 글자가 연해 보이고, 용량도 크더라고요. 모바일 맞춤 폰트가 아니구나 싶었죠. 그래서 나눔바른고딕을 기획하게 됐어요.”


네이버 디자이너 사이에서 나눔고딕보다 힘찬 고딕글꼴을 원하는 목소리도 한몫했다. 본문은 나눔고딕을 써도 제목처럼 힘 있게 강조하고 싶은 내용은 윤고딕이나 산돌고딕과 같은 상용 글꼴을 썼단다.


“나눔고딕으로 페이지를 만들면 예쁘긴 한데 딱 떨어지는 맛이 없고 좀 힘이 없어 보인다고 해요. 그래서 딱 떨어지는 고딕체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모바일에서 쓰기 좋게 용량이 작고 가독성은 높으면서, 나눔고딕을 대체할 만한 걸로요.” 나눔바른고딕의 기획의도다.


나눔고딕은 용량이 7~8MB였고, 나눔바른고딕은 그 절반이다. 여전히 상용 글꼴보단 용량이 큰 편이다. 한땀한땀 작업한다는 매뉴얼 힌팅 때문이다. 매뉴얼 힌팅은 글꼴이 화면에서 잘 드러나게 하려면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다.


네이버는 2008년 나눔고딕과 나눔명조를 무료로 풀며 “2~4년 동안 글꼴을 추가 제작해 순차적으로 배포”한다고 말했다. 그때 말한 시기에서 1년이나 더 흘렀다. 중간에 담당자가 바뀐 뒤에도 나눔손글씨, 나눔에코, 나눔바른고딕을 새로 만들었다. 앞으로 어떤 새로운 나눔글꼴을 내놓을까.


손혜은 팀장은 “지금 나온 글꼴에 조금 더 얇거나 조금 더 진한 것을 만들지 고민한다”라며 “나눔바른고딕에 대한 반응을 우선 지켜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글꼴이 나오는 데 1년 걸리는데 굵기 얘기만 했으니, 내년에 새 글꼴은 나오지 않는단 얘기려나. 어쩜 올해가 마지막일 수도 있다. 내년 상황을 모르지 않는가. 이 얘기에 손혜은 팀장은 이 말을 덧붙였다. “네이버가 하는 캠페인에서 역사가 있는 유일한 캠페인인 걸요.” 그래, 나눔글꼴만큼은 네이버가 뚝심있게 하길 바란다.


끝으로, 블로터닷넷 기본 글꼴이 나눔글꼴이라고 했는데 나눔글꼴로 보이지 않으면 ☞이 글을 읽어보시라.


나눔고딕의 특징 찾기 ‘ㅈ’과 ‘ㅊ’

나눔고딕과 나눔고딕이 아닌 걸 대번에 찾는 사람을 종종 본다. 비결을 물으면 ‘그냥 보면 안다’란 대답뿐이다. 나눔고딕을 찾아낼 가장 손쉬운 방법은 ‘ㅈ’과 ‘ㅊ’에 있다.

일반 고딕은 ‘ㅈ’이 3획이다. 반면 나눔고딕의 ‘ㅈ’은 2획이다. ‘ㅈ’이 다르니 ‘ㅊ’도 자연 달라진다.

손혜은 팀장은 나눔글꼴만의 색깔이 ‘ㅈ’과 ‘ㅊ’에서 드러난다고 말했다.

“어린 아이가 한글을 배울 때 고딕처럼 ‘ㅈ’을 3번에 나눠 쓰지 않아요. 나눔고딕은 쓰기 획과 같게 2획으로 만들었죠. 그 특징을 나눔명조와 나눔바른고딕에도 이었어요. 나눔글꼴 전체의 특징이 ‘손글씨 쓰듯이’죠.”


▲애플산돌고딕과 나눔고딕에서 ㅈ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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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 http://www.bloter.net/archives/166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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