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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재단, 오픈소스로 저널리즘을 혁신하다

OSS 게시글 작성 시각 2014-09-17 01:02:58 게시글 조회수 3918

2014년 09월 12일 (금)

ⓒ 블로터닷넷, 이성규 기자 dangun76@bloter.net



“네가 발명하면, 우리는 돈을 대겠다.”


나이트재단이 운영하는 뉴스 챌린지 프로그램의 모토는 이렇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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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엔 이름조차 생소한 나이트재단은 디지털 저널리즘 생태계의 아마존과 같은 존재다. 자금력과 인력 격차로 ‘디지털 괴리‘가 현격해지고 있는 저널리즘 산업에 지속적으로 오픈소스 도구를 공급하면서 숨 쉴 공간을 마련해주고 있어서다. 디지털 전환이라는 거대한 조류 앞에 무력감을 호소하는 중소규모 언론사엔 더없이 고마운 비영리기관이기도 하다.


특히나 ‘돈 안되는’ 저널리즘 도구를 개발하는 스타트업에 나이트재단은 그야말로 구세주와도 같다.우샤히디도큐먼트클라우드에이치뉴스 등 미국 비영리 저널리즘 서비스를 대표하는 오픈소스 기반 스타트업들은 대부분 나이트재단의 든든한 지원 속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 지금은 전세계 수백개 언론이 필수품처럼 쓰고 있는 오픈소스 도구들이지만, 나이트재단의 기금 지원이 없었다면 태어나기조차 어려웠던 프로젝트다. 이러한 오픈소스 프로젝트들은 나이트재단이 전세계 저널리즘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대변하고 있다.


64년 전, 나이트 형제가 1천만원 밑천으로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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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에스 나이트와 제임스 엘 나이트 형제


나이트재단의 출범은 소박했다. 신문사 운영으로 부호가 된 존 에스 나이트와 제임스 엘 나이트 형제가 아버지를 추모하기 위해 1950년 9047달러를 씨앗 자금으로 조성한 것이 발단이 됐다. 참고로 나이트재단은 존에스앤드제임스엘나이트재단(John S. and James. L Knight Foundation)의 약자다. 처음엔 연구자를 지원하는 목적이 컸지만 이후 규모가 커지면서 언론 사업 전반으로 지원 대상이 확대됐다. 그러기를 벌써 60여년째, 지금은  뉴스와 예술의 혁신을 위한 미국 최대의 자선기금 지원단체로 성장했다.


나이트재단 분석 자료에 따르면 대부분의 펀딩 자금은 ‘애크론 비콘 저널’, ‘마이애미 해럴드’ 등 나이트 가문이 소유하고 있는 언론사로부터 나온다. 나이트재단은 1965년 나이트 형제의 어머니가 나이트 신문 지분을 넘겨받으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이후 1972년 모든 지분을 매각하면서 300만달러 규모이던 펀드는 2400만달러로 크게 증가하게 된다. 이 때부터 저널리즘에 대한 본격적인 지원 사업도 시작된다.


1975년 나이트 신문사가 리더 퍼블리케이션과 합병하면서 미국에서 가장 큰 미디어 그룹으로 성장하게 됐다. 당시 대주주인 존 에스 나이트는 모든 재산을 나이트재단에 기부한다. 1981년 존 에스 나이트가 사망한 뒤 1986년까지 그의 자산 4억2800만달러가 나이트재단으로 귀속됐다. 나이트재단은 2013년 현재 23억 달러의 자산을 운영하면서 매년 1천억원 이상의 기금을 아낌없이 나눠주고 있다.


구조 변화를 이끈 CEO ‘알베르토 이바르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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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erto Ibarguen 나이트재단 회장

나이트재단이 저널리즘 테크놀로지, 특히 오프소스와 인연을 맺게 된 데는 알베르토 이바르겐 CEO의 역할이 컸다. 2005년 나이트재단 CEO로 취임한 그는 일성으로 ‘미디어 혁신 이니셔티브’를 주창했다. 기자 출신으로 마이애미 헤럴드와 엘 누보 헤럴드의 발행인을 거친 이바르겐은 취임 이후 나이트재단의 저널리즘 지원 방향을 전면 수정했다. 학술 지원과 저널리스트 경력 개발 프로그램에 편중돼 있던 사업 영역도 디지털 혁신과 비영리 뉴스 스타트업 지원으로 확대했다.


이바르겐은 2006년 저널리즘 지원 프로그램인 ‘나이트 뉴스 챌린지’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나이트재단을 연구해온 세스 루이스 미네소타대 교수는 “미디어 혁신 이니셔티브의 가장 중요한 결과물이 바로 나이트 뉴스 챌린지였다”고 설명했다.


저널리즘과 혁신을 유독 강조해 왔던 이바르겐에게도 나이트 뉴스 챌린지는 그의 모든 열정이 담긴 핵심 프로그램이었다. 에릭 뉴턴 나이트재단 수석 고문은 ‘패스트컴퍼니’와의 인터뷰에서 뉴스 챌린지 프로그램이 탄생할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알베르토는 메모를 적었다. 쳐다보지도 않고 테이블 위에 펼쳐놓았다. 그리곤 말했다. ‘나는 어떤 규칙도 원하지 않는다. 만약 우리가 그 규칙을 만들게 된다면, 뉴스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우리의 아이디어를 맞는 생각을 지닌 사람만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뉴스 챌린지의 핵심은 그런 사람을 비롯해, 우리가 전혀 알지 못했던 외부의 아이디어를 가져오는 것이다’.”

2007년 첫 입상작을 발표한 나이트 뉴스 챌린지는 7년이 지난 현재까지 콘테스트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외부 아이디어를 수혈하는 방식으로 콘테스트라는 형식을 빌려온 것이다. 비즈니스 모델이 없어도, 저널리즘과 혁신이라는 키워드로 아이디어나 프로토타입만 갖고 있다면 누구나가 지원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한 것도 이바르겐의 구상이었다. 하지만 여기에 간과해서는 수상 조건이 있다. 바로 오픈소스다.


오픈소스의 공동체 가치 받들어


‘나이트 뉴스 챌린지’ 프로그램 수상팀은 오픈소스로 코드를 개방해야 한다. 나이트재단은 “오픈소스형 접근은 반복과 개선을 독려하며, 그 유익이 수상자에 머무르지 않고 보다 넓은 공동체로 퍼져나간다”고 강조한다. 오픈소스가 지닌 공동체적 가치에 주목한 것이다.


나이트재단이 요구한 코드 개방은 더 많은 언론사들에 유익으로 돌아가고 있다. 도큐먼트클라우드가 대표 사례다. 도큐먼트클라우드는 언론사가 보관하고 있는 문서를 판독하고 저장하며 검색, 관리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한다. OCR 기술과 텍스트 분석 기술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프로젝트는 2009년 나이트재단 수상작으로 선정돼 71만9500달러를 지원받았다.


다큐먼트클라우드가 적용된 뉴욕타임스 기사
도큐먼트클라우드가 적용된 ‘뉴욕타임스’ 기사(출처 : 뉴욕타임스)


전 ‘뉴욕타임스’ 인터렉티브 에디터였던 애론 필호퍼 등이 개발한 도큐먼트클라우드는 ‘뉴욕타임스’, ‘가디언’, ‘프로퍼블리카’, ‘LA 타임스’ 등 전세계 200여개 언론사가 도입해 탐사보도에 활용하고 있다. 나이트재단의 최근 수상작 가운데 가장 성공적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도큐먼트클라우드의 핵심 코드는 깃허브 등에 공개돼 누구나가 가져가 쓸 수 있다. 2011년에는 사용자 인터렉티브 기능 개선 프로젝트가 나이트 뉴스 챌린지에 선정되면서 추가 업데이트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문서 판독 및 관리 시스템으로 상용 소프트웨어 이상의 기능을 갖추고 있지만 이용하는 데는 전혀 제약이 없다.


‘판다’(Panda)라는 데이터 분석도구도 비슷한 사례다. 미국 탐사보도기자협회(IRE)가 개발한 판다는 기자들이 데이터를 정리하고 분석하는 데 쓰는 웹기반 도구다. 2011년 나이트재단으로부터 15만달러를 지원받았고, 지금도 꾸준히 업데이트되고 있다.


이외에도 아이티 대지진과 일본 원전 폭파 사고 때 유명세를 탄 지도 정보 서비스 우샤히디, 온라인 기사에서 정보원을 추적해주는 에이치뉴스 등 전세계 수많은 언론들이 무상으로 활용하고 있는 도구가 나이트 뉴스 챌린지의 혜택을 입었다.


저널리즘은 이미 코드의 집합체


저널리즘과 기술의 융합은 비교적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1952년 미국 방송사 ‘CBS’가 유니박(UNIVAC)의 컴퓨팅 기술을 빌려 대통령 선거 결과를 예측한 데서 시작됐다. 그뒤 컴퓨터 지원 보도(CAR)라는 개념이 등장했고, 이후 기술을 활용한 분석 보도는 일반적인 보도문화로 자리잡았다.


디지털 시대로 들어서면서 저널리즘과 기술의 결합은 더욱 강고해졌다. 하루가 머다하고 쏟아지는 다양한 형식의 멀티미디어 스토리텔링, 데이터 저널리즘은 기술의 도움 속에서만 가능하다. 최근들어서는 ‘알고리즘 저널리즘’이라는 용어가 등장할 정도다. 이미 저널리즘은 코드 그 자체이거나 혹은 코드의 집합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기술을 언론사가 직접 개발해내기란 쉽지 않다. 디지털 저널리즘에 동원되는 기술은 진입장벽이 높거나 고비용을 수반한다. 웬만한 규모의 언론사가 아니라면 엄두조차 못 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뉴욕타임스’의 ‘스노우폴’을 그림의 떡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오히려 더 보편적이다.


오픈소스와 저널리즘이 만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언론사들은 오픈소스 도구를 자사 시스템에 최적화해 새로운 전형의 저널리즘을 실험할 수 있고, 비용도 크게 절약할 수 있다.


기능적 개선과 실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오픈소스 문화의 유입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문화로서 오픈소스는 투명성과 참여, 반복을 대변한다. 오픈소스 도구의 채택은 이런 문화가 뉴스룸으로 스며든다는 걸 뜻한다. 외부 오픈소스 커뮤니티와 지속적으로 대화하고, 그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개방적으로 접근할 때 오픈소스 생태계는 성장하고 성과를 발휘한다.


폐쇄적인 특성이 강한 뉴스룸이 외부 커뮤니티와 동등하게 협력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문화적 교류 효과는 결코 작지 않다. 버그를 수정하고 오픈소스 도구를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에서 뉴스룸은 자연스럽게 오픈소스 정신을 내면화하게 된다. 니키 우셔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오픈소스는 다양한 소스들의 결합, 협력적 공동체 구축, 투명성의 증가 등이 강조되기 때문에 전통적인 저널리즘 방식을 재고하는 역량을 제공해준다”고 말했다.(출처 : ‘open source and journalism‘, 610쪽)


언론사가 주저하면 오픈소스 생태계는 중단


저널리즘의 혁신을 위해 오픈소스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혁혁한 공로를 세운 나이트재단이지만 그들에게도 고민은 있다. 오픈소스의 단점과 한계다. 나이트재단은 지난 8월30일 공개한 수상작 리뷰 문서를 통해 “오픈소스가 절대적인 선은 아니다”라고 털어놨다. 사례별로 유연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교훈도 얻었다고 밝혔다. 오픈소스의 장점이 한계로 작용하는 태생적 특성 때문이다.


첫 번째는 오픈소스 개발이 도중에 중단될 가능성이다. 세스 루이스와 니키 우셔는 “언론사들이 과도하게 주저하면서 혁신을 하지 않는다면, 해커들이 지속적으로 업데이트에 참여할 동인을 잃게 된다”고 지적했다. 오픈소스 참여자들에게 보람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프로젝트가 지속되기는 힘들다는 의미다.


‘크리티컬 매스’를 확보하지 못하고 도중에 좌초되는 경우도 염두에 둬야 한다. 나이트 뉴스 챌린지의 지원을 받고도 서비스가 중단된 사례는 의외로 여럿이다. 2011년 36만달러를 지원받은 아이위트니스와 27만5천달러를 지원받은 오픈블록 루럴은 채 몇 년도 버티지 못하고 서비스가 사라졌다. 나이트재단은 “오픈소스 개방 조건은 수상자들이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오픈소스 라이선스 선택지 위에서 탄력적으로 정책을 개선해 시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디지털 전환 중소규모 언론사에 단비


최근 들어 나이트 재단은 ‘저널리즘’보다 ‘정보’라는 키워드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여기에 ‘공동체 복원’도 보태졌다. 뉴스나 미디어 산업에서 더 나아가 인터넷 영역 전반으로 지원 범위를 확대해나겠다는 포석으로 읽힌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터넷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이를 반영하듯 나이트 뉴스 챌린지의 2014년 테마는 ‘표현의 자유와 혁신을 위한 인터넷의 강화’로 설정됐다. ‘체크아웃 인터넷‘, ’코드2040‘, ’글로벌 감시 측정‘ 등 올해 수상작의 대부분이 자유로운 인터넷의 재구축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럼에도 오픈소스 공개 원칙은 지켜지고 있다. 그것이 공동체에 기여하는 첩경이라는 사실을 나이트재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트 뉴스 챌린지는 2007년 첫 수상작을 배출한 이래 111개 프로젝트에 3700만달러를 쏟아부었다. 연간 50억원 이상의 금액이 디지털 저널리즘 혁신에 무상으로 투입된 셈이다. 이 자금은 지금도 디지털 전환을 놓고 시름하고 있는 전세계 중소언론사들에 단비가 되고 있다. 수익 없인 생존도 없는 척박한 한국 뉴스 스타트업 생태계에 나이트재단은 그저 부러움의 대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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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 http://www.bloter.net/archives/205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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