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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프린터 혁명이 품은 불발탄, 저작권

OSS 게시글 작성 시각 2014-07-17 17:24:58 게시글 조회수 4343

2014년 07월 07일 (월)

ⓒ 블로터닷넷, 이성규 기자 dangun76@bloter.net



사례 1: 최근 벨기에 기업 물랭사르(Moulinsart)사는 씽기버스 측에 밀레니엄디지털저작권을 위반했다는 통지문을 보냈다. 씽기버스에 업로드 된 틴틴 로켓 캐릭터의 3D 도면을 삭제하라는 요청이었다. 씽기버스 측은 해당 3D 프린터용 도면을 삭제한 뒤 해당 사실을 이용자에게 통보했다.


사례 2: 미국 방송사 HBO는 2013년 2월 3D 도면 디자이너 페르난도 소사에게 저작권 위반을 통보한 뒤 “3D 프린터로 제작된 ‘왕좌의 게임’ 아이폰 거치대의 판매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페르난도 소사는 자신이 3D 프린터로 제작한 해당 제품을 자신이 운영하는 웹사이트에서 약 60달러에 판매하던 중이었다. 페르난도 소사는 즉각 판매를 중단한 뒤 HBO 측과 라이선스 협의를 벌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1년 여가 지난 현재까지도 HBO는 응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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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프린터용 도면을 놓고 권리자와 디자이너 간의 저작권 송사가 빈번해지고 있다. 자유로운 표현을 촉발하는 ‘혁명적 기술’ 3D 프린팅이 저작권이라는 난제를 만나 휘청거리고 있다. ‘상상을 프린팅한다’는 구호가 무색해질 만큼 저작권과의 충돌면은 넓고도 깊다. 3D 프린팅판 냅스터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3D 도면용 DRM 서비스 등장


3D 프린팅과 저작권의 충돌은 자연스럽게 DRM 도입 논의로 흐르고 있다. 저작 권리자 측은 DRM 기술을 도면에 적용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관련 기업은 벌써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 스타트업 오쎈타이즈(Authentise)는 3D 프린팅에 따른 도안의 공유를 막기 위해 DRM 서비스를 개발해 2013년 10월 출시했다. 오쎈타이즈가 개발한 샌드세이프라는 서비스는 도면 구매자가 한 번 인쇄하면 다시는 재사용할 수 없도록 제한해 공유를 원천 차단하도록 돕는다. 디즈니와 같이 캐릭터의 도면 파일을 판매하려는 이들을 표적 고객으로 삼고 있다.


국내 업체도 등장했다. 마크애니는 2014년 2월 3D 프린터 도면 DRM 솔루션 ‘캐드 세이퍼’를 내놨다. 이 시스템은 캐드 전문 프로그램 대부분을 지원한다. 외부로 파일을 저장하거나 e메일로 파일을 첨부하게 되면 모두 접근을 차단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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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씽기버스에 올라온 라인 캐릭터 ‘브라운’(출처 : 씽기버스)


정부는 3D 프린팅 콘텐츠 확보 및 활용 방안의 일환으로 DRM 도입 계획을 분명히 하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지난 6월18일 발표한 ‘제1회 3D프린팅산업 발전협의회‘에서 “국가디지털콘텐츠식별체계(UCI)를 적용하여 원활한 콘텐츠 유통을 지원하고, 지재권 보호를 위해 3D 프린팅용 DRM 등 기술적·정책적 보호수단도 마련한다”고 발표했다.


캐릭터 판매 기업들도 DRM 채택을 포함한 법적 보호 장치에 긍정적이다. 라인이 대표적이다. 라인 캐릭터는 국내뿐 아니라 일본, 동남아에서 상당한 매출을 올릴 정도로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현재 씽기버스에는 라인 캐릭터 ‘브라운’의 3D 디자인 파일이 등록돼 있는 상황이다. 이 도면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라이선스를 적용해 누구나 내려받아 프린트할 수 있게 돼 있다.


라인 측은 “브라운 캐릭터는 지적재산권이 존재한다”며 “도용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무단 유포를 막으려고 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하지만 DRM 방식 등 구체적인 실행 방안에 대해서는 현재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이런 흐름 탓인지 관련 사업자들도 조심스러운 반응이다. 3D 프린팅 피규어를 제작해 판매하고 있는 이학운씨는 “아직까지는 없지만 알 만한 장난감 캐릭터를 프린팅해달라는 요청이 온다면 거절할 것”이라고 말했다. 혹시라도 고소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알려진 모델의 얼굴을 스캐닝해 피규어로 제작해달라는 주문을 받은 적도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초상권 침해가 염려돼 정중히 사양했다고 했다. 같은 이유로 3D 프린팅 디자인 파일도 잘 공유하지 않는 편이라고도 했다.


“기술 발달로 DRM도 실효성 없어”


DRM의 실효성 문제도 벌써부터 제기된다. 이미 DRM은 디지털 음악 산업에 광범위하게 도입된 뒤 소리소문없이 조용히 잊혀지고 있다. 200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DRM 프리가 일반화된데다, 다운로드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로 디지털 음악의 중심축이 이동하면서 DRM은 사실상 화석화된 유물이 됐다.


DRM은 다양한 해킹 기술이 공개되면서 사실상 무용지물이 되기도 했다. 1999년 CD에 적용된 DRM 기술인 CSS가 역공학을 통해서 해킹되었으며, DeCSS 프로그램도 공개됐다. 애플의 페이플레이 DRM도 ‘QT페어유즈’라는 프로그램이 배포되면서 무력화됐다. 킨들도 마찬가지다. 2009년 킨들 DRM은 다른 기기에서 전자책 콘텐츠를 사용할 수 있도록 무력화시키는 프로그램이 공개되면서 실효성을 상실하기도 했다.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컴퓨터 성능 및 해킹 관련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무력화 시도를 위한 여건이 과거에 비하여 훨씬 용이하며, 온라인을 통한 콘텐츠 유통이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때문에 3D 프린팅에 적용될 DRM도 같은 운명에 처할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라이선스 비용 증가로 산업 활성화엔 역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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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프린팅용 3D 스캐너. (출처 : 메이커봇)


DRM 도입은 권리자의 이익을 보호할 수는 있으나 3D 산업의 활성화에는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DRM이 본격화할 경우 3D 프린터 제조사들이 상당한 라이선스 비용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즉 DRM이 적용된 파일을 프린터에서 자유롭게 읽어들이기 위해선 제조사가 해당 권리자에게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3D 프린터를 제작하는 중소규모 스타트업은 막대한 라이선스 비용을 피하기 위해 진입을 망설이거나 지연할 개연성이 높아진다. 3D 프린터 제작에도 DRM 요구사항이 반드시 적용돼야 하기에 저렴하고 대중적인 하드웨어의 출현을 저해할 수도 있다. 이는 3D 스캐너에도 해당되는 대목이다.


디자인 파일을 공유해온 씽기버스와 같은 오픈소스 플랫폼도 DRM 시스템을 적용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게 된다. 이 과정에서 들여야 할 기술적 비용도 적지 않다. 문제는 DRM 중심으로 재편될 경우 이용자의 창의적 3D 디자인 작업물이 유통되는 비율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다양한 하드웨어의 등장을 지체시키고 자유로운 공유문화를 위축시키면서 3D 프린팅 생태계의 활력을 떨어뜨리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정부의 3D 프린터 활성화 정책과 부분적으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저작권과 특허가 보호하고 있는 원본성의 정의로 불똥이 튈 수도 있다. 최근 들어 도면 디자이너들은 피규어 등을 3D 스캐너로 복사한 뒤 일부를 변형해 업로드하고 있다. 저작권을 회피하기 위한 접근이다. 이 경우 새로운 창작물로 인정해야 할지 아니면 저작권 위반으로 봐야 할지 여전히 논란거리다. (참고 논문 :The future of three-dimensional printing)


특허에 의한 보호도 애매하기는 마찬가지다. 현행 국내 디자인보호법은 물품화되기 이전의 3D 도면은 보호 대상에 포함하지 않는다. 따라서 3D 프린터용 도면 파일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조차도 출력된 제품에 대해서는 저작권을 주장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도면 해적질 너무 두려워할 필요 없다”


Makerbotdml 보급형 3D printer


이 같은 ‘해적행위’에 대해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는 견해도 있다. ‘허구: 3D 프린팅의 새로운 세계’의 저자 맬버 쿠먼은 ‘포퓰러메카닉스’ 기고글에서 “현명한 기업들은 현재 존재하고 있는 상품에 가치를 더하거나 품질을 보장한 정통성 있는 제품을 구매하도록 유인하기 위해 프리미엄 가격을 제시하는 방법을 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난감 제작 기업 하스브로와 3D 시스템즈의 파트너십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했다. 하스브로와 3D 시스템즈는 어린이들이 하스브로 장남감을 디자인할 수 있는 웹사이트를 공동으로 개발해 수익을 올리고 있다.


스티븐 위커 코넬대 교수와 스테파니 산토소(박사과정)는 3D 프린팅 이용자의 관련 정책 결정 참여를 주문했다. 이들은 공동 저작한 논문을 통해 “정부 관계자 정책 결정자, 3D 프린터 제조사, 다른 저작권 권리자 등과의 논의 테이블에 3D 프린터 이용자가 참여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권리 보호와 생태계의 유연성이 균형을 갖추기 위해서는 특정 이해집단의 목소리만 반영돼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3D 프린팅과 저작권·특허 간의 갈등은 낡은 제도와 신기술 간의 문화적 충돌 양상을 띠고 있다. 갈등이 아직 국내에선 본격화하고 있진 않지만 3D 프린터 산업 육성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정부의 정책을 감안하면 수면 위로 부상하는 건 시간 문제다. 자칫 DRM 도입에 힘이 실릴 경우 3D 프린터가 가져올 ‘제3의 혁명’은 한참 뒤로 미뤄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법의 원조국인 영국이 앤 여왕법 이후 300여년 만에 디지털 시대에 맞게 저작권을 현대화한 결정은 좋은 참고 사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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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 http://www.bloter.net/archives/198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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