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장인] ‘가치 있는 일’에 삶을 쏟은 ‘분산컴퓨팅 아버지’
2014년 05월 14일 (수)
ⓒ 블로터닷넷, 이지현 기자 jihyun@bloter.net
한 기술이 발전하는데는 여러 사람의 노력이 필요하다 . 최근 주목받는 클라우드와 빅데이터에도 많은 기술들이 집약됐다. 여기엔 특히 분산컴퓨팅이 활용됐다. 분산컴퓨팅 덕분에 이전에 작업하지 못한, 어렵고 복잡했던 기술을 실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 분산컴퓨팅 기술에 큰 공을 세운 인물 중 한 명이 레슬리 램포트다. 그는 올해 3월에는 IT업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튜링어워드’에서 상을 받을 만큼 해당 분야에서 공로를 인정받았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설립자는 “램포트는 컴퓨터 과학계에서 불가능한 것들이 어떻게 가능하게 되는지 보여주고 있다”라고 평가한 바 있다.
☞레슬리 램포트 튜링어워드 관련 동영상 보기(출처: 마이크로소프트)
레슬리 램포트는 1941년에 태어나 MIT에서 수학으로 학위를 받았다. 이후 브랜다이즈대학에서 역시 수학과 관련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수학자로 살아온 지 올해로 50년이 넘었지만, 그는 ‘컴퓨터과학자’라는 호칭으로 더 많이 불린다. 이는 그가 연구하는 내용들이 주로 컴퓨터 시스템이나 알고리즘와 분석에 자주 활용됐기 때문이다. 우리 나이로 만 73살이지만 그는 여전히 활발하게 연구활동을 벌이고 있다. 레슬리 램포트는 “매일 아침 9시까지 회사에 출근해 4시나 6시까지 연구에 집중하다 퇴근한다”라고 설명했다.
2001년부턴 지금까지 그는 마이크로소프트연구소(Microsoft Research, MSR)에 속해 있다. MS연구소는 전산학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1991년에 설립된 부서다. 현재 1천명이 넘는 과학자와 공학자가 이곳에서 활발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레슬리 램포트 뿐만 아니라 튜링상, 필즈상 을 수상한 IT업계 수많은 구루들이 MS연구소에서 배출됐다. 레슬리 렘포트는 “MS연구소 연구원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분야를 명확히 알고 이를 연구한다”라며 “또 그들은 세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하고 싶어한다”라고 설명했다.
한 분야에 오랫동안 일하다 보면 하고픈 일에 대한 고민이 생기고 슬럼프가 따르게 마련이다. 레슬리 램포트는 좀 예외다. 그는 “난 운이 좋은 편”라며 “연구하는 내용과 환경에 대해 이제껏 큰 고민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저는 일하는 것과 노는 것을 구별하지 않아요. 제가 생각하기에 ‘좋은 연구원은 연구 소재 자체로 놀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해요. 제가 관심있어 하는 부분을 재미있게 연구했거든요. 좋은 동료를 만난 것도 한몫했고요.”
기술산업은 미래를 자주 언급하는 분야다. 여러 조사기관들도 5~10년 뒤 기술을 미리 내다보는 보고서를 내놓는다. 레슬리 램포트는 미래 기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대답은 생각보다 싱겁다. 그는 기술이 뭔지, 미래에 어떤 일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과거나 미래보다 현재에 더 집중하는 모습이다.
“공학자나 과학자에게 한마디 조언을 부탁한다고요? 아니요. 전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저는 기술에 대해 잘 알지 못해요. 기술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도 생각하지 않았아요. 특정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연구를 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지요. 단지 지금 내가 좋아하는 일에 집중한 것 뿐이죠. 제가 하는 일이 한 사회의 시민으로서 나쁜 일이 세상에 덜 일어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책임감만 있을 뿐이죠.”
오랫동안 인생을 살아온 선배로서 젊은 세대에게 당부하고픈 말은 없을까. 그는 “내가 예상하는 대로 미래가 흘러가는 건 불가능하다”라며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은 좋은 교육을 받고 이후 자신이 잘하고 즐길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저는 어렸을 때 야구선수나, 소방관, 노벨상을 수상하는 물리학자가 되기를 꿈꿨어요. 하지만 생각했던 어떤 것도 성취하지 못했죠. 그래서 저는 뭔가를 꿈꾸고 준비하기보다 일단 무엇이든지 시작하는 사람으로 바뀌었어요. 제가 학창시절일 때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기술과 사회는 정말 많이 바뀌었거든요. 기본적으로 저는 과거를 생각하며 ‘만약에 이랬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아요.”
레슬리 램포트에게 재미있는 일은 수학을 연구하는 일이다. 석·박사 시절엔 편미분 방정식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고, 수학을 활용한 기술들을 만들어냈다. 디지털 서명 방식을 고안하거나, 프로세스 제작방법과 분산시스템에 활용되는 알고리즘 관련 연구 결과가 그 예이다. 그는 “수학은 어떠한 공학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학문이며, 컴퓨터 과학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라며 “내 연구결과가 요즘 사용되는 기술분야와 밀접하게 연결될 줄은 미처 몰랐다”라고 밝혔다.
최근 그가 관심있어하는 분야는 TLA(Temporal Logic of Actions)이다. TLA는 시간논리구조가 언제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표현한 논리구조다. 보통 분산시스템 연구에 활용된다. 여기에 ‘TLA+ 툴박스‘라는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필요한 자료와 공부 내용을 외부에 공개하고 있다.
“TLA를 구성하는 TLA+언어는 탄탄한 수학 논리 구조 위에서 만들어졌어요. 수학이란 학문은 수천년에 걸쳐 연구됐고, 위대한 인물들이 수학을 연구했죠. 그런 면에서 수학은 내게 항상 경이로운 존재였고, TLA+에 대한 흥미를 가질 수 밖에 없죠.”
많은 사람들이 레슬리 램포트를 IT업계에서 중요한 인물로 뽑는다. 반대로 그는 IT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누구를 생각할까. 레슬리 램포트는 ‘밥 테일러’를 꼽았다. 밥 테일러는 1965년부터 방위고등연구계획국에서 연구했던 인물로, 연구실 안에서 컴퓨터를 연결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이를 인터넷의 탄생으로 보기도 한다.
“밥 테일러는 현재 존재하는 소프트웨어와 시스템에서 많은 영향을 끼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어요. 제록스 파크 연구실에 있으면서 인터넷 모델을 구현했지요. 개인용 컴퓨터라는 개념도 발명했고요. 그가 없었다면 지금같은 기술의 진보는 불가능했을 거라 봅니다”
오랜 세월동안 자신이 하고 싶은 분야를 연구할 수 있었다고 하니 어찌보면 그는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그는 “나는 성공이란 게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겠다”라며 “그것이 무엇인지 정의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 행복 그런것들이 어떤 건지는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성공, 행복같은 걸 정의하고 목록으로 만들어 삶의 목표로는 삼지 않아요. 사람마다 잘 할 수 있는 능력은 하나씩 있어요. 반대로 하지 못하는 한계라는 걸 가집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삶의 목표로 삼아야 할까요. 충분한 가치를 만들 수 있는 걸 목표로 삼고, 그것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레슬리 램포트 강의 ‘컴퓨테이션이란 무엇인가’ 동영상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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