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픽 브리핑 | 혁신과 거품 사이··· 블록체인의 거침없는 질주

산지에서 매장까지 농산물의 유통 경로를 추적하고, 국경을 넘나들며 화폐 제한 없는 편리한 결제 서비스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은 무엇일까? 혹은 대양을 가로지르는 선박 컨테이너 수만 개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피의 다이아몬드’를 걸러내는 기술은? 정답은 '블록체인(Blockchain)’이다. 최근 미국 내에서 가장 빠르게 늘어나는 프리랜서 수요 기술로 꼽히고 ‘시간당’(일당이 아니다) 급여가 13만 원이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가트너 선정 2018년 10대 전략 기술 트렌드에도 어김없이 이름을 올렸다.


블록체인은 여러 사용자 간에 전자 원장을 공유하는 공용 전자 원장이다. 완전히 공개된 방식 혹은 특정 자격을 가진 사람만 참여하는 네트워크 형태로 구현할 수 있다. 각 쓰레드의 디지털 거래 기록을 ‘블록’이라고 하는데, 특정 참여자의 거래 내용이 기재돼 있다. 이 내용은 모든 네트워크 참여자 간 합의가 있어야만 업데이트할 수 있고 새 기록이 이전 기록 뒤에 붙는 형태여서 한 번 기록되면 지울 수 없다. 따라서 네트워크에서 일어난 모든 거래 내용을 있는 그대로 영구적으로 기록할 수 있다.

블록체인이 주목받는 이유는 ‘지우거나 위조하기 힘든’ 속성 때문이다. 블록체인의 기록을 임의로 바꾸려면, 즉 해킹하려면 이론적으로 블록체인 형성에 참여하는 모든 컴퓨터를 해킹해야 한다. 데이터 저장소 한 곳만 해킹하면 되는 기존 방식과 비교했을 때 획기적으로 보안을 강화할 수 있다. 반면 시스템 운영 비용은 오히려 저렴해진다. 거래 정보를 한곳에 저장하지 않으므로, 거대한 저장소도, 이를 보호하기 위한 겹겹의 보안 장치도 필요 없다. 그만큼 운영에 들어가는 비용도 줄일 수 있다(물론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현재 블록체인을 가장 활발하게 이용하는 곳은 금융권이다. 앞서 언급한 국경과 화폐 제한 없는 결제 서비스는 IBM이 개발해 상용화를 진행 중이고, 마스터카드도 결제 과정을 간소화한 자체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내놓았다. 국내에서는 신한금융, 은행연합회 등이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 HPE 등이 '서비스로서의 블록체인(BaaS)’을 선보이면서 대규모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고 블록체인을 테스트할 수 있게 됐다. 블록체인은 안전한 거래 인증이 필요한 모든 업계와 분야로 확산하는 추세다.

블록체인이 단기간에 급성장하면서 경계론도 함께 고개를 들고 있다. 가장 많은 지적은 아직 기술과 지원 소프트웨어가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근 블록체인을 활용한 암호화폐인 이더리움 시스템이 코딩 취약성으로 거래가 중단되면서 우려가 현실화되기도 했다. 2016년 새로 시작한 블록체인 프로젝트 2만 6,000개 중 1년이 지난 현재까지 진행 중인 것이 8%에 불과하다는 통계도 있다. 관련 기술이 아직 걸음마 단계이고, 현장의 검증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일부 우려에도 불구하고 블록체인의 장래를 밝게 보는 전문가가 더 많다. 하버드대 교수 카림 라카니에 따르면, 블록체인은 정보를 저장하고 공유하는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예를 들어 기존 주식 거래 과정은 일종의 ‘블랙박스’여서 정보 처리 과정에서 이용자가 소외된다. 반면 블록체인은 공개적인 분산 네트워크를 만들어 누구나 거래 데이터를 검증, 공유한다. 우리가 이러한 공개와 공유를 경험한 것은 역사상 단 1번뿐이었다. 바로 ‘인터넷'이다. 라카니가 블록체인을 ‘인터넷’에 비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